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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압력 리셉터 (2021 노벨생리의학상 해설)

작성자 : 신인철 ㅣ 등록일 : 2021-11-24 ㅣ 조회수 : 831

저자약력

신인철 교수는 KAIST 생명과학과 박사(분자세포생물학 전공)로서, 현재 한양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incheol@hanyang.ac.kr)

매운 맛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세기에 있었던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경쟁사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었던 라면 회사 S는 매운맛이 특화되어 있는 비빔라면을 통해 다시 예전의 위상을 되찾았고 이에 자극받은 다른 라면 회사에서도 매운 맛 라면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어찌 라면뿐일까? 강력 범죄를 수식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던 단어였던 ‘엽기’는 PC통신 시절 많은 인기를 얻었던 온라인 연재 소설 원작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그 단어의 의미가 엉뚱한 방향으로 확장되더니 지금은 엄청나게 매운 떡볶이의 상표로 쓰이고 있다. 엽기적으로 매운 떡볶이, 매운 갈비찜, 매운 족발, 불닭발, 불짬뽕, 마라탕 등등 매운 음식이 유행하고 있는 지금, 매운맛에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사건이 과학계에서도 일어났다. 매운 맛에 관한 연구에 노벨 생리 의학상이 수여된 것이다.

우선 매운 맛을 과연 맛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학창 시절 과학 교과서에서 혀의 각 부분이 감지할 수 있는 네 가지 맛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혀의 특정 부분에만 어떠한 맛을 감각하는 수용체가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것은 잘못 설계된 실험으로부터 내려진 틀린 결론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맛에는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의 네 가지 기본 맛이 있다는 사실을 교과서의 혀 그림과 더불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이 네 가지 맛에 추가로 뒤늦게 맛으로 인정된 글루탐산이나 핵산이 주는 ‘감칠맛’까지 포함한 다섯가지 맛이 존재한다고 정설로 굳어진 상태이다. 또한 기름 성분이 주는 느끼한 맛까지 여섯 번째 맛으로 인정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아주 다양한 복합적인 ‘맛’은 이러한 다섯 가지 기본 맛의 조합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주 많은 종류의 서로 다른 냄새, 그리고 식재료의 물리적 질감과 수분, 지방 등의 함량 비율과 같은 기타 요인이 조합되어 이루어진다. 사실 매운 것을 느끼는 감각은 맛 감각의 한 종류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음식의 복합적인 ‘맛’을 결정하는 기존의 요소들인 맛, 냄새, 질감 등의 조합에 추가로 양념처럼 작용하는 아픈 감각인 통감(痛感) 혹은 뜨거운 온도를 느끼는 감각에 해당한다. 그래도 매운 맛을 맛의 한 종류라고 분류하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다면 청양고추를 다듬던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피부의 점막을 건드려보자. 아주 뜨거운 매운 맛을 눈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단맛이나 짠맛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맛이지만 매운 맛은 우리 몸의 모든 조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온도 감각인 것이다. 

매운 맛의 본질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매운 맛을 느끼는 것일까? 매운 맛을 내는 고추의 성분인 캡사이신은 세포막 위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수용체 TPRV1 (transient receptor potential vanilloid1)과 결합하여 맵다는 신호를 우리의 대뇌로 전달한다. 이 수용체는 캡사이신뿐 아니라 43 ℃ 이상의 높은 온도에도 반응하여 뜨겁다는 신호의 전달도 담당한다. 결국 매운 것을 느끼는 감각과 뜨거운 온도를 느끼는 감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모두 그 정도가 지나치면 고통(pain)을 전달하는 신호로 느껴지게 된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이 N사의 신(매울 辛)라면, O사의 열(뜨거울 熱)라면을 먹고 모두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방한용 핫팩이 흔하지 않던 시절 혹한기 훈련을 야외에서 견뎌내야 했던 군인들이 군화 속에 말린 고추를 넣어 발이 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이 TRV1 수용체를 자극하여 고통이나 열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말 미국 UCSF의 데이빗 줄리어스(David Julius) 교수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캡사이신 유래 통증/온도 유발 신호 전달 경로를 찾기 위해 캡사이신에 반응하지 않는 배양 세포에 감각신경세포로부터 얻은 아주 많은 종류의 유전자 조각을 삽입하는 실험을 통해 캡사이신에 대한 반응성을 유발시키는 유전자를 찾아내어 VR1이라 명명하였다. 이후 VR1과 초파리에서 빛과 반응하는 수용체로 기존에 알려져 있었던 TRP와의 구조적 유사성이 발견되어 VR1은 TRPV1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포유동물에게서 열 신호를 감지하는 TRPV1 수용체의 첫 발견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은 TRPV2, TRPV3, TRPV4 등의 TRPV 패밀리 수용체를 밝혀내는 연속된 후속 연구를 이끌어 내었다. 또한 데이빗 줄리어스 교수와 스크립스 연구소의 아뎀 파타푸티언(Ardem Patapoutian) 교수는 서로 독립적인 연구를 통하여 저온에 반응하는 수용체인 TRPM8도 발견하였다. 이들 수용체들은 각기 서로 다른 온도 구간을 감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RPV1은 43 ℃ 이상, TPRV2는 52 ℃ 이상, TPRV3는 23~39 ℃ 사이의 온도, TPRV4는 24~32 ℃의 온도에 반응하고 TRPM8은 시원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물질인 멘톨과 25 ℃ 이하의 저온을 인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도 감각 수용체 TRPV 패밀리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동안 저온 수용체 TRPM8에 대한 연구를 데이빗 줄리어스 교수와 동시에 보고한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는 압력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에 대한 연구를 별도로 진행하였다. 압력 자극을 담당하는 수용체는 그동안 박테리아 수준에서는 알려져 있었지만 고등생물에서는 전혀 연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는 데이빗 줄리어스 교수가 열 수용체를 동정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캡사이신 대신 작은 바늘과 같은 모양의 마이크로피펫을 이용하여 배양 세포를 콕콕 찌른 후 일어나는 세포막 안팎의 전위차를 조사하였다. 온도에 반응하는 TRPV 수용체는 온도의 변화 또는 캡사이신에 반응하여 수용체의 구조가 변하면서 세포 밖의 이온을 세포 안으로 통과시켜 세포막 안팎의 전위변화를 유발하여 온도 변화 신호를 전달한다.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는 압력을 감지하는 수용체도 같은 방법으로 압력 신호에 의해 이온을 세포 내로 이동시키는 이온 채널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실험을 수행하였다. 그의 가설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Piezo1과 Piezo2라는 이온 채널 압력 수용체가 발견되었다. 그동안 전혀 알려져 있지 못하였던 촉각과 압력 감각이 전달되는 과정의 분자적 메커니즘이 드디어 베일을 벗은 것이다.

빛을 인지하는 시각, 음파를 감지하는 청각,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분자를 인지하는 후각, 수용액 속에 녹아 있는 용질의 존재를 감지하는 미각에 비해 온도와 압력을 인지하는 감각 메커니즘은 최근까지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데이빗 줄리어스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의 평생을 바친 연구에 의해 온도와 압력을 감지하는 세포막 위의 수용체와 이들이 전달하는 온도와 압력 신호 전달의 분자적 메커니즘이 마침내 드러나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삼라만상을 감각기관이 인지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좀더 완벽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감각 수용체에 대한 연구 중 두 개의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분야였던 온도 감각과 압력 감각에 관한 연구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은 지금까지 살펴본 감각기관의 작동 원리에 대한 마지막 비밀 두 가지를 밝혀낸 데이빗 줄리어스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가 공동 수상하였다. 온도를 감지하는 TRPV 수용체와 압력 신호를 전달하는 Piezo 수용체는 약한 자극에서는 열과 압력 신호를 매개하고 강한 자극을 받게 되면 통증 신호를 전달하므로 난치성 만성 통증, 이유를 모르는 신경성 통증의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노벨상 수상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국에 불고 있는 매운 맛 음식의 바람처럼 향후 온도 수용체와 압력 수용체를 만성 통증 치료와 접목시킨 연구에 대한 뜨거운 열풍이 불어올 것으로 예상한다.


*아태이론물리센터의 <크로스로드>지와의 상호 협약에 따라 크로스로드에 게재되는 원고를 본 칼럼에 게재합니다. 본 원고의 저작권은 아태이론물리센터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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