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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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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 노벨물리학상

편집후기

등록일 : 2021-12-16 ㅣ 조회수 : 168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키워드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다. 복잡계란 무엇인가? 영문 명칭만 놓고 보면, 복잡계는 그냥 말 그대로 “복잡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복잡계에서는 무엇이 복잡하다는 의미일까?

거칠게 말하면, 복잡계란 광범위한 스케일에서 발생하는 공간 및 시간 요동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시스템이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카오스(chaos) 현상을 생각해 보자. 카오스 현상이란 아주 미세한 초기 조건의 차이가 충분히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무자비하게 증폭되어 종국에는 시스템의 동역학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흔히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로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아주 작은 미시 스케일에서 발생하는 요동이 거시 스케일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의 집단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자, 그런데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업적을 살펴보면 조금 헷갈리게 된다. 업적들이 모두 복잡한 시스템에 관한 것은 분명하지만, 서로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노벨 물리학상의 1/2은 기후 및 기상학에 큰 업적을 남긴 슈쿠로 마나베(Syukuro Manabe)와 클라우스 하셀만(Klaus Hasselmann)에게 수여되었다. 그들의 업적은 공식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믿을 수 있는 정확도로 예측하고 기후 변동성을 정량화하는 기후 모형을 개발한 공로(for the physical modelling of Earth’s climate, quantifying variability and reliably predicting global warming)”로 요약되었다. 반면, 이번 노벨 물리학상의 다른 1/2은 조르조 파리시(Giorgio Parisi)에게 수여되었다. 그의 업적은 공식적으로 “원자에서 행성 스케일까지 물리계에서의 무질서와 요동의 상호 작용의 발견(for the discovery of the interplay of disorder and fluctuations in physical systems from atomic and planetary scales)”으로 요약되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두 분야는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간단하게 말해서, 마나베와 하셀만의 업적은 기상학이고, 파리시의 업적은 통계 물리학이다. 하나는 비평형 상태를 다루는 유체 역학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평형 상태를 다루는 통계 물리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마나베와 하셀만의 업적은 지구 온난화를 설명하는 기후 모형의 개발이고, 파리시의 업적은 스핀 유리(spin glass) 상태에서 발생하는 소위 복제 대칭성 파괴(replica symmetry breaking) 현상의 이론적 규명이다.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두 분야에 왜 노벨 물리학상이 공동으로 수여되었을까?

이런 의아함이 들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은 위상학적 상전이와 위상학적 물질 상태에 관한 이론적 발견에 대한 업적(“for theoretical discoveries of topological phase transitions and topological phases of matter”)으로 데이비드 사울레스(David Thouless), 던컨 홀데인(Duncan Haldane), 마이클 코스털리츠(Michael Kosterlitz)에게 수여되었다. 우선, 코스털리츠와 사울레스는 위상학적인 들뜸 상태가 새로운 종류의 상전이(나중에 두 사람의 이니셜을 따서 이름 붙여지게 되는 KT 상전이)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예측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업적과는 별개로 사울레스는 양자홀효과의 위상학적인 성질을 규명하는 공식(TKNN 공식)을 고안하게 되는데, 이 공식은 이후 위상 절연체(topological insulator)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홀데인은 여러 업적이 있지만, 특히 위상 절연체가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모형을 제시하고 분석함으로써 위상 절연체의 토대를 닦은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위상학적인 상전이와 위상학적인 물질 상태는 “위상학”이라는 말만 같이 쓰이지 실질적인 연관성은 그리 깊지 않다.(참고로 이 두 주제에 동시에 업적을 남긴 사울레스는 2016년도 노벨 물리학상의 1/2을 수상하였다.) 그런데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업적들은 2016년보다 연관성이 더 없어 보인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렇다…

다행히 이번 호의 특집 기사를 써 주신 세 분의 필자, 부산대 IBS 기후 물리학 센터(Center for Climate Physics)의 액슬 티머만(Axel Timmermann) 단장님,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하경자 교수님, 그리고 명지대 물리학과 권철안 교수님께서 2021년도 노벨 물리학상의 내용과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기상학과 통계 물리학의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두 분야 사이의 연관성이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새삼 다시 깨달았다. 물리학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다.

마나베의 업적은 복잡한 대기 현상을 오직 수직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공기의 대류 문제로 치환하여 간단한 1차원 복사-대류 모형을 수립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하셀만의 업적은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빠르게 요동치는 날씨 변수와 천천히 변화하는 기후 변수를 분리하여 마치 랑주뱅 방정식(Langevin equation)과 같은 확률적 미분 방정식(stochastic differential equation)의 형태로 확률적 기후 모형(stochastic climate model)을 정립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과정은 빠르게 요동치는 날씨를 백색 소음(white noise)처럼 완전히 무질서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물리학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인 단순화 과정이다.

따지고 보면, 파리시의 업적에서도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스핀 유리 상태를 기술하는 모형으로 결합 상수가 가우시안 확률 분포를 따르는 이징 모형(Ising model)을 설정한 것이다. 복잡한 스핀 유리 상태를 이렇게 간단한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은 물리학자들의 장기이다. 하지만 거의 항상 그렇듯이, 물리학자들에게 흥미로운 문제는 모형은 간단하지만 해는 복잡한 문제이다. 파리시가 얻은 복제 대칭성을 파괴하는 해는 복잡하고 심오하다. 물론, 확률적 기후 모형의 해도 고도로 복잡한 수치 분석을 필요로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특집 기사의 편집을 마치고 나서 필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리학이 보여주는 우주의 아름다움이란 단순함과 복잡함의 절묘한 상호작용이 아닐까?

[편집담당 실무이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박권 (kpark@kia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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