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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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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돈에도 방정식이 있다

경제물리학이 걸어온 길

작성자 : 정우성·김승환 ㅣ 등록일 : 2022-07-07 ㅣ 조회수 : 7,621 ㅣ DOI : 10.3938/PhiT.31.022

저자약력

정우성 교수는 200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Boston University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08년부터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wsjung@postech.ac.kr)

김승환 교수는 1987년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코넬대학교, 고등과학원 등을 거쳐 1990년부터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swan@postech.ac.kr)

Introduction to Econophysics

Woo-Sung JUNG and Seunghwan KIM

We introduce the milestones of econophysics. It covers the scope of the field and contribution to the physics and economy community.

경제물리학(econophysics)은 “물리학과 첨단기술”에서도 2000년 특집으로 다루었던,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물리학 분야이다. 당시에는 생소하고 특이한 분야로 소개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 이외의 다양한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이 늘었다. 이 즈음에서 다시 한 번 경제물리학이 탄생한 배경과 역사, 현황과 의의 등을 되짚어보는 건 의미가 크다. 물리학은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흔히 생각하던 자연현상에 국한된 물리학의 범주에서 끝없이 확장하며,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다른 학문과의 협력을 넓혀간다. 자연과학의 철학과 연구방법을 사회현상에 적용하는 노력의 일환이 경제물리학이다.

경제물리학은 1990년대 중반, 통계물리학자들을 중심으로 탄생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경제 현상을 물리 법칙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경제 현상은 정량화된 풍부한 자료가 있다. 가령 흔히 접하는 경제 데이터인 주식 시장의 자료뿐 아니라 금리, 무역수지, 환율, 제품 생산량, 물가 등 다양한 변동량이 축적된다. 특히 금융당국 등에 의해 검증된 정확한 데이터가 쌓인다. 금융시계열은 짧은 시간 간격으로 기록되는 고품질 자료이다. 또한 금융 시계열 자료가 보여주는 패턴은 비선형 동역학에서 다루는 현상과 비슷하다. 비선형 복잡계 현상을 깊이 바라보는 통계물리학자에게 금융 자료는 그야말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보물창고이다.

1990년대부터 경제물리학이 주목받은 배경에 정보통신 기술 발전이 있다. 그간 부지런히 쌓아두기만 했던 금융데이터를 본격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전산자원이 생겼다. 보다 빠른 분석이 가능하고, 더 많은 자료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예전보다 훨씬 큰 용량으로 축적되는 자료를 가만 보고 있을 물리학자들이 아니다. 그 뒤 금융시장도 더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고, 더 많은 학자들이 자료를 분석하며 경제물리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소위 복잡계에서 이야기하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 나타난다.

학문 분야로서의 ‘경제물리학’ 용어는 1995년 만들어진다. 경제물리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늘면서, 통계물리 학술대회에서 제시된 용어이다. 미국의 통계물리학자인 유진 스탠리가 제안한 용어이며, 학술대회 발표를 모아서 발표한 학술지 ‘Physica A’를 통하여 물리학계에 처음 소개된다. 이후 1998년 경제물리학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개최되고, 2000년에는 경제물리학 입문을 위한 학술서적이 발간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후반부터 POSTECH을 중심으로 경제물리를 소개하는 겨울학교와 세계경제물리학회, 아시아태평양경제물리학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가끔 금융시장은 엄청난 폭락을 겪곤 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후 시장의 안정성과 수요-공급 사이의 균형을 믿는 주류 경제학은 이 같은 폭락이나 폭등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경제는 항상 완전한 평형 상태에 있으며 공급과 수요는 정확히 일치한다. 어떤 시장도 시장을 독점할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안정된 시장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모든 것을 최상의 상태로 만든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경제는 그렇지 않다. 예상과 다른 혼돈을 생각보다 자주 겪는다.

복잡계에서 시작한 경제물리학은 주류 경제학과는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경제 현상을 바라본다. 우선 경제물리학에서의 경제는 안정된 평형 상태가 아니다. 경제현상에는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 외에도 양의 되먹임이 있고, 평형상태뿐 아니라 비평형 상태가 존재한다. 환원주의적 분석으로는 결코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없고, 불완전한 정보로 불완전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는 동일하지 않고 각자의 특성과 판단기준을 갖고 제각기 움직인다. 즉 그간 경제학에서 공고하게 받아들여졌던 여러 가정을 처음부터 부정하고 나선다. 이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도 모든 것을 의심하고 살펴보는 물리학의 기본적인 특징과도 연관된다.

물론 초기 경제물리학이 다소 무리한 입장을 가졌던 측면도 있다. 물리학자들은 특히 자신의 학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크다. 물리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이 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현상을 물리학이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초기 경제물리학은 이런 관점에서 시작된 측면이 없지 않다. 경제현상의 원인이나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금융 시계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물리 현상과 동일하다는 점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물리 현상의 원인과 시스템의 원리를 그대로 경제계에 투영하기도 했다. 이런 접근이 불편했던 학자들이 ‘물리 제국주의’라며 비판하였는데, 자신들의 힘과 문화 등으로 세계 전역을 점령하려는 제국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요즘은 양쪽을 모두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는 경제물리학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경제물리학은 초기에 경제・경영학계에서 미움을 받거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과 다른 관점을 가졌던 탓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물리학에서는 기존 경제학의 안정된 평형 상태와 다른 시각을 갖고 출발한다. 가령 ‘수확 체감의 법칙’이 아닌 ‘수확 체증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대개 투자를 계속하면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의 투자는 더 이상 수익을 늘리지 못한다. 가령 밭에 비료를 주면 어느 시점까지는 수확량이 늘어나지만, 언젠가부터는 추가로 투입하는 비료에 비해 늘어나는 수확량이 적어진다. 그래서 경제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생각이다.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복잡계 분야를 이끈 경제학자인 브라이언 아서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하나의 제품이 사실상 시장을 석권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양의 되먹임’ 덕이다.

이외에도 금융시장과 물리학의 연결고리는 여럿 있다. 현대의 금융시장은 주식뿐 아니라 선물, 옵션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파생 금융상품이 있다. 새로운 금융기법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으며, 복잡한 수학과 물리 모델을 활용한다. 오랜 시간 수많은 학자와 금융 전문가들이 시장 예측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주가 예측은 어려운 문제이다. 금융 시장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사례는 1900년 즈음으로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이 설명한 브라운 운동과 주가의 움직임을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지금 보면 아주 간단한 수학적 접근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주먹구구식의 접근에 불과하던 비과학의 주식시장을 과학의 세계로 끌어왔다. 이후 수학 분야를 중심으로 금융 연구가 활발해졌고, 금융 수학이라는 분야를 만들었다. 1970년대 들어오며, 파생 금융상품인 옵션의 가격을 결정하는 이론이 블랙(Fischer Black)과 숄즈(Myron Scholes)라는 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블랙-숄즈 방정식’이라고 이름 붙은 모형 덕에 숄즈는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는다. 아쉽게도 블랙은 이미 사망한 뒤여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 방정식 이후 파생 금융상품 시장은 급성장한다. 뒤에 알려진 것이지만, 블랙-숄즈 방정식은 열전달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 방정식과 매우 유사하다. 물리학자들이 이 방정식을 푼 것은 블랙과 숄즈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다.

복잡한 수식이 더욱 중요해지며, 보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금융 시장의 중심인 뉴욕 월스트리트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경제물리학 때문만은 아니다. 금융 시장에서의 복잡하고 난해한 수식과 모델링을 해결하는데, 물리학자들이 가장 적합하다. 특히 대용량 자료를 다루는 게 경험이 많고,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그래서 이론물리학자들의 진출이 유리하다. 물론 이론물리학자들이 계속 연구를 이어갈 일자리가 마땅하지 않아진 탓도 있다. 이렇게 월스트리트에 진출한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이 갖고 있는 접근방법을 금융계에 이식한다. 가령 앞서 설명한 주류경제학의 가정을 의심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주식시장이 브라운 운동처럼 무작위로 움직인다면 예측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비선형 동역학 현상은 무작위 움직임으로 보이지만, 규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기존 금융계가 어려움을 겪던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간다.

물론 물리학만으로 경제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다른 학문이 모두 그러하지만, 경제와 물리 역시 서로 함께 할 부분이 많다.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물리학의 역사도 이제 짧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는 융합형 전문가가 많이 길러졌으며,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특집 역시 물리학을 전공하고, 물리학과 등 정통적인 물리학자의 활동 무대가 아닌 곳에서 활약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경제물리학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금융시계열과 행위자 기반 모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후 물리학을 전공하고 경제와 금융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물리학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하는 역할을 볼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물리학은 경제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네이처’, ‘뉴사이언티스트’ 등에서 편집자로 활약한 마크 뷰캐넌이 정리한 ‘경제물리학의 공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며, 뒤이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다 많은 학자들이 경제물리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물리학자들은 금융시장에서 실험적 사실을 추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파생시장에서 시장이 크게 움직일 확률은 그 크기에 대해 세제곱에 반비례합니다. 이는 “두터운 꼬리(fat tails)”라 불리는 현상으로, 시장의 커다란 변동이 일반적인 정규분포에서 예상되는 것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연구가 물리학자에 의해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60년대, 프랙탈의 아버지 만델브로트가 이 현상을 발견한 이후, 최근 노벨상을 수상한 유진 파마는 자신의 첫 논문에 이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의 규칙을 더욱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2. 물리학자들은 시장과 다른 자연현상 사이의 관계를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이 크게 움직인 이후 작은 잔여 움직임은 지진이 발생한 후 여진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오모리 법칙(Omori’s law)에 의해 설명됩니다. 이는 이 현상이 단순히 경제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보다 일반적인 동역학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3.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과 함께 보다 현실적인 시장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산타페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시뮬레이션의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전략을 시장에서 적응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두터운 꼬리(fat tail)” 현상이 발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이로부터 발전한 시뮬레이션 모델은 거래세의 도입과 같은 매우 미묘한 금융정책의 현실적 효과를 예측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4. 경제물리학 분야에서 분석된 소수자게임(역주: 매 선택에서 더 적은 수의 사람이 선택한 진영이 이득을 보는 게임)은 시장이 움직이는 원리의 핵심이 참여자들이 가진 전략의 다양성에 있음을 보였습니다. 시장은 참여자들이 매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때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참여자와 전략의 수가 늘어나 드문 기회들조차도 다수의 비슷한 전략들에 의해 공략될 때 붕괴합니다.

5. 예일대의 경제학자 존 지아노코플로스는 기관들의 레버리지가 너무 높아진 것을 주요 경제위기의 발생원인으로 지난 20년 동안 주장해왔습니다. 이제 정책결정자들은 레버리지의 한도를 경제상황에 맞춰 조절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레버리지가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제물리학의 결과에 의한 것입니다.

6. 물리학자들은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다른 근본적인 원인들을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경제학자들은 위험이 분담될 때 전체 시스템이 더 안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위험이 너무 많이 분담될 때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7. 물리학자들은 또한 시장의 효율성과 안정성의 관계 역시 밝혔습니다. 기존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더 효율적이 될수록 더 “완전(complete)”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경제물리학은 완전해진 시장이 본질적인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였습니다.

8. 오늘날 각 금융기관은 시장의 복잡성으로 인해 자신들이 직면한 위험을 계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경제물리학은 이 위험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뎁트랭크(DebtRank)” 척도를 개발했습니다. 이 척도는 각 기관의 위험도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 척도가 공개된다면 각 금융기관은 너무 위험한 금융행위를 하지 않을 인센티브를 가지게 되며, 전체 시스템은 더 안정될 수 있습니다.

출처: 뉴스페퍼민트, 번역 및 작성: 이효석 (KAIST 물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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