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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거대물리학: 큰 꿈을 꾸다

편집후기

작성자 : 박승일 ㅣ 등록일 : 2022-10-26 ㅣ 조회수 : 2,715

몇 해 전 영면한 프리먼 다이슨은 다방면에 재능이 넘치는 이론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다. 별 하나를 구조물로 둘러싸서 에너지를 수확하는 ‘다이슨 구’처럼 그가 고안한 개념만 수십에 달한다. 그런 그가 저서 「상상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개념보다는 새로운 도구가 더 자주 과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자연 현상의 발견을 추구하는 과학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도구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칼 세이건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TV 시리즈 ‘코스모스’를 촬영하던 때까지만 해도 아직 상상의 영역이었던 외계 행성이 불과 이십 년 만에 수천 단위로 발견된 것도, 중성미자의 진동을 발견하여 입자 물리학의 근간 이론인 표준 모형의 한계를 입증한 것도 케플러 망원경과 일본의 중성미자 관측소 슈퍼 카미오칸데와 같은 강력한 도구 덕분이었다. 다이슨 자신도 트리가(TRIGA)라는 연구용원자로를 설계하는 데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 트리가 연구용원자로를 도입해 과학의 불씨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케플러 망원경도 슈퍼 카미오칸데도 만들고 유지하는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과학이 진보할수록 더 ‘잘’ 관찰하고 더 ‘잘’ 측정하기 위해서는 더 뛰어난 성능의 도구가 필연적인데 이런 성능 좋은 도구는 비싸기 마련이다. 따라서 첨단 대형연구시설은 고액의 청구서를 감당할만한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이나 강대국이 주로 건설하고 보유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주도하고 결과적으로 노벨 과학상도 독과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프리먼 다이슨이 말한 그대로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적인 성능의 대형연구시설은 1990년대에 건설한 포항 방사광가속기와 하나로 연구용원자로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양성자가속기, 엑스선 자유전자 레이저, 중이온가속기가 뒤를 잇고, 현재 충북 오창에 새로운 방사광가속기가 건설 중이다. 선진국 반열에 갓 올라선 나라로서는 일견 순조롭게 대형연구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구축, 운영 실태와 대형연구시설에 관한 국가적인 정책과 전략의 미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한국물리학회에서는 2021년부터 정책위원회 산하에 국가대형연구시설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원의 목소리를 듣고 정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바를 타진하고 있다. 그리고 대형연구시설 관련 정보를 회원과 공유하여 건강한 토론을 끌어내고자 학술발표회 기간에 특별 세션을 개최하였으며, 이렇게 「물리학과 첨단기술」에 대형연구시설 특집을 마련하였다. 이번 특집에서는 오랜 기간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하나로 연구용원자로의 현황을 알리고 지난 몇 년 사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초고속 전자회절 장치와 함께 새롭게 건설하고자 하는 시설 두 곳을 소개한다. 슈퍼 카미오칸데를 넘어 세계 최대의 지하 중성미자 시설을 꿈꾸는 한국 중성미자 관측소와 전인미답의 경지인 수백 PW에 도전하는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세계 6위의 국력을 가졌다고 소개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과학도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그간 대단한 성장을 거듭했다.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첨단의 성능을 갖춘 대형연구시설과 장비를 적절하게 계획하고, 구축하고, 운영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국제 협력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세계인을 놀라게 할 발견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객원 책임편집위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승일 (JMSPARK@KAE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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