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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PLAZA

물리 이야기

네 번째 쿼크

작성자 : 이강영 ㅣ 등록일 : 2023-12-28 ㅣ 조회수 : 124

저자약력

이강영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물리학 이론을 전공해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스핀>, <불멸의 원자>, <보이지 않는 세계> 등이 있다. (kylee.phys@gnu.ac.kr)

소설에서라면 모를까, 현실에서 물리학의 중요한 업적이 하룻밤 만에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실험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실험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실제로 실험을 해서 원하는 데이터를 얻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자물리학과 같은 현대의 거대과학 실험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작은 실험이라도 승인을 얻고 연구비를 구하는 데만도 1년 이상이 걸리는 일은 흔하고, 현존하는 최대 실험인 LHC는 기획에서 가속기를 완성하는 데에만 20년이 넘게 걸렸다. 오늘날 계획하고 있는 차세대 거대 가속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물론 예외도 있다. 마침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고 문제 자체가 잘 정의돼 있을 경우, 추진력 있는 물리학자가 일단 발동이 걸리면 놀라울 만큼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무려 입자물리학 실험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던 드문 예를 예전에 이 지면에서 소개한 적도 있다.1)

이론의 경우라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는 일도 가능하다. 수백 페이지의 계산 끝에 결과를 얻는 논문도 있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나오는 논문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런 논문임에도 결과는 매우 중요하고 심오할 수도 있다. 그렇게 아이디어가 반짝이던 순간을 하나 소개해 보도록 하자. 1) 의 경우의 이론물리학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 출신의 존 일리오풀로스(John Iliopoulos, Greek: Ιωάννης Ηλιόπουλος, 1940‒)는 아테네 국립공과대학(National Technical University of Athens, NTUA)을 나와서 오르세의 파리 대학에서 필립 메이어(Philippe Meyer, 1925‒2007)와 끌로드 부쉬아(Claude Bouchiat, 1932‒)의 지도를 받으며 이론물리학을 공부했다. 일리오풀로스는 1966년 9월부터 CERN에서 포스트닥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그 시절 상호작용을 다루던 주요 방법이었던 흐름대수(current algebra)를 연구했다. 한편으로는 한창 젊은 나이였던 일리오풀로스는 CERN의 다른 젊은 연구원들과 방문자들과 함께 물리학뿐 아니라, 스키, 등산, 그리고 먹고 마시는 일에도 열심을 다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막 하버드 대학에 자리를 잡고 CERN을 방문한 셀던 글래쇼(Sheldon Lee Glashow, 1932‒)였다.

일리오풀로스는 글래쇼와 먹고 마시러 다니면서, 한편으로 약한 상호작용의 양자 효과를 계산할 때 발산하는 고차항을 다루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마땅한 해결을 보지 못한 채로 CERN에서의 계약 기간을 마쳤다. 그는 일단 고국으로 돌아가서 6개월의 군 복무 의무를 마치고 다음 일자리를 찾았다. 다행히 1969년 9월부터 글래쇼가 있는 하버드에 포스트닥 자리를 얻은 일리오풀로스는 글래쇼와 함께 계속해서 약한 상호작용의 고차항 발산 문제를 연구했다. 얼마 후 이 연구 그룹에 이탈리아 출신의 루치아노 마이아니(Luciano Maiani, 1941‒)가 합류했다. 이들은 모두 먹고 마시는 문제에도 진심이었고 취향도 잘 맞았으므로, 공동 연구는 학교뿐 아니라 단골 레스토랑들을 돌아다니며 진행되었다. 그들의 단골집은 중국음식점인 “the Peking on the Mystic”과 특이한 이름의 해산물 요리집 “the Legal Seafood”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몇 주 동안 연구에 진전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이아니가 다른 일로 늦어서 일리오풀로스와 글래쇼 두 사람만 일리오풀로스가 가져온 아이디어를 토론하고 있었다. 글래쇼가 공격하면 일리오풀로스가 방어하는 식이었다. 그 아이디어란 새로운 렙톤을 도입하는 것이었는데, 글래쇼의 지적에 따라 일리오풀로스는 모델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칠판에 이런저런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한순간 문제가 풀린 것 같아 보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서는 일리오풀로스 본인의 말을 직접 듣도록 하자.2)

어떤 순간 내가 새로운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물었다. “이건 어때?” 글래쇼가 대답했다. “훌륭해.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 가지 사실만 빼면.” 내가 왜 존재하지 않느냐고 묻자 글래쇼가 답했다. “바보 같으니라고, 이건 새로운 렙톤이 들어간 게 아니라 새로운 쿼크가 들어간 거잖아!” 실수로 새로운 입자를 쿼크 자리에 그린 것이다. 마침 그때 마이아니가 들어왔다. 그는 칠판을 보고 물었다. “쿼크가 네 개인 이 새로운 이론은 뭐야?” 우리 둘은 그를 쳐다보았다. 마법의 단어가 말이 되어 나온 것이다.

그들은 곧바로 새로운 쿼크가 존재하면, 그동안 고민해 온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리오풀로스가 묘사한 토론 장면 자체는 이론 그룹 미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실수를 해서 올바른 답을 쓰다니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글래쇼가 몇 년 전에 보어 연구소에서 연구할 때 같은 연구원이던 비요르켄(James Daniel “BJ” Bjorken, 1934‒)과 함께 바로 그 아이디어로 논문을 썼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3) 당시까지 알려진 쿼크는 셋뿐이었으므로 네 번째 쿼크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순전히 가설의 영역이었다. 사실 쿼크가 세 개라는 것은 겔만이 쿼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모티브가 되었던 점이었으므로 그것을 넘어서는 데는 다소의 용기와, 더 중요하게는 강력한 이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전의 글래쇼와 비요르켄의 논문에서는 그러한 이유가 없이 임의로 새로운 쿼크를 도입하는 걸 생각해 본 것이었고, 따라서 새로운 쿼크의 성질에 대해서도 이렇게 저렇게 추론해 보았을 뿐이었다. 반면 방금 이들이 도입한 새로운 쿼크는 이론의 구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쿼크의 성질에 대해서 구체적인 말을 해줄 수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현대적인 언어로 간단히 보여주면 다음과 같다. 이 당시 알려진 바로는 렙톤은 전자와 뮤온 두 종류가 존재하고 이들에게는 각각 중성미자가 존재해서 SU(2) 이중항을 이룬다. 좀 더 직관적으로 쓰자면 렙톤들은

\[\begin{pmatrix}\sf{전자중성미자} \\ \sf{전자}\end{pmatrix}, \begin{pmatrix}\sf{뮤온중성미자} \\ \sf{뮤온}\end{pmatrix}\]

라는 식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쿼크는 당시에는 겔만이 제시한 대로 업(u), 다운(d), 스트레인지(s), 이렇게 세 종류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중에서 업 쿼크와 다운 쿼크가 SU(2) 대칭성으로 연결되므로 위와 같이 쓰자면

\[ \begin{pmatrix} u \\ d \end{pmatrix}, (s) \]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약한 상호작용은 이중항에만 작용하므로 스트레인지 쿼크는 약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다. 스트레인지 쿼크가 약한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카비보(Nicola Cabibbo, 1935‒2010)가 제안한 대로, 다운 쿼크와 스트레인지 쿼크가 서로 섞여서

\[ \begin{pmatrix} u \\ d \cos\theta + s \sin\theta \end{pmatrix}, (-d\sin\theta + s \cos\theta) \]

가 되어야 한다.4)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전기적으로 중성인 약한 상호작용을 계산할 때 \(\small d\bar{d}\) 대신 \(\small (d\cos\theta + s\sin\theta)\cdot (\bar{d}\cos\theta + \bar{s}\sin\theta)\)가 되어 다운 쿼크와 스트레인지 쿼크가 섞이는 항이 생기게 되고, 이 항이 계산할 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네 번째의 쿼크 \(\small q_{N}\)를 새로 집어넣으면 쿼크도 렙톤과 마찬가지로

\[\begin{pmatrix} u \\ d\end{pmatrix}, \begin{pmatrix} q_N \\ s\end{pmatrix}\]

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고 카비보의 섞임을 고려하면

\[\begin{pmatrix} u \\ d\cos\theta + s \sin\theta \end{pmatrix}, \begin{pmatrix} q_N \\ -d \sin\theta + s \cos\theta \end{pmatrix}\]

가 된다. 이렇게 되면 두 개의 이중항이 모두 약한 상호작용에 참가해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부분에 나타났던 다운 쿼크와 스트레인지 쿼크가 섞이는 항이 상쇄되고 \(\small d\bar{d}+s\bar{s}\)가 된다. 따라서 고차항에서 발산하는 항이 사라지게 된다. 이때 새로 도입한 쿼크는, 보다시피 업 쿼크와 같은 위치에 있으므로, 뮤온과 전자의 관계처럼, 질량을 제외한 다른 성질이 모두 업 쿼크와 같다.

글래쇼, 일리오풀로스, 마이아니가 네 번째 쿼크라는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계산하고 확인하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일단 써놓고 나면 너무도 분명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곧바로 차를 타고 MIT로 달려가서 프랜시스 로우(Francis Eugene Low, 1921‒2007)의 연구실에서 즉석 이론 세미나를 열었다. 로우는 당시 MIT의 석좌 교수로서, 보스톤의 젊은 입자 이론 물리학자들의 지도자 역할을 했고, 글래쇼와 일리오풀로스도 평소에 종종 로우의 연구실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가하곤 했었다. 그날의 세미나에는 재키브, 베네치아노, 푸비니, 켄 존슨, 그리고 스티븐 와인버그 등이 참가했다. 세미나에서 그들은 방금 갓 탄생한 이론을 자세히 설명하고 로우의 칭찬을 들었다. 1차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은 늘 그러듯이 the Legal Seafood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바로 얼마 전에 마이아니와 결혼한 새댁 푸치 마이아니도 합석해서 세 이론물리학자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글래쇼는 푸치에게, “우리 일은 나중에 교과서에 나올 거에요.”라고 자랑했다.2) 역시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다.

그들은 바로 다음날부터 논문을 쓰기 시작해서 곧 피지컬 리뷰에 투고했다. 한 차례 수정을 요구받은 후 논문은 출판되었다. 네 번째 쿼크를 일단 도입하고 나면, 위에서 보는 것처럼 렙톤과 쿼크들이 똑같은 형태로 표현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약한 상호작용이 쿼크와 렙톤에 똑같은 구조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들의 결과를 ‘렙톤-하드론 대칭성(lepton-hadron symmetry)’이라고 표현했고 논문의 제목도 그렇게 지었다.5) 하지만 이들의 이론은 흔히 세 사람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GIM 메커니즘이라고 불리운다.

약한 상호작용이 렙톤과 쿼크에 똑같이 작용한다면, ‘렙톤의 모형’이었던 와인버그의 약한 상호작용 이론을 쿼크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이고, 이로써 와인버그의 이론이 렙톤만의 모형이 아니라 모든 것의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의 논문은 표준모형이 한 단계 더 진전되었음을 의미하며, 표준모형의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나온 글래쇼와 비요르켄의 1964년 논문에서 이들은 네 번째 쿼크에 해당하는 입자에게 새로운 양자수를 부여하면서 참(charm)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참이라는 이름은 스트레인지와 대비되는 뜻으로 고른 것이다. 새로운 이름을 찾을 이유가 없으므로 그들은 네 번째 쿼크를 참 쿼크라고 부르기로 했다. 글래쇼는 이에 대해 1976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요르켄과 나는) 원자핵 이하의 세계에 나타나는 (쿼크와 렙톤 사이의) 대칭성에 매료되고 만족해서 (새로 도입한) 그 입자를 참 쿼크(charmed quark)라고 불렀다. ... 참 쿼크의 존재는 거의 마법과 같은 방식으로 원치 않고 관측되지 않는 붕괴 과정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므로, 일리오풀로스와 마이아니와 나는 참(charm)이 악을 피하는 마법의 도구라는 또 다른 정의를 내놓았다.”6)

얼마 후 마이아니는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들은 송별 파티를 열어주었는데, 일리오풀로스는 그들이 파티에 참가한 MIT의 실험물리학자 샘 팅(Samuel Chao Chung Ting, 丁肇中, 1936‒)에게 참 쿼크를 찾아야 한다고 열심히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2) 그렇게 11월 혁명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7)

각주
1)이강영, 물리학과 첨단기술 27(6), 51 (2018).
2)J. Iliopoulos, “What a fourth quark can do”, in The Rise of the Standard Model, edited by L. Hoddeson, L. Brown, M. Riordan and M. Dresden (Cambridge, 1997), p.447.
3)B. J. Bjorken and S. L. Glashow, Phys. Lett. 11, 255 (1964).
4)N. Cabibbo, Phys. Rev. Lett. 10, 531 (1963).
5)S. L. Glashow, J. Iliopoulos and L. Maiani, Phys. Rev. D 2, 1285 (1970).
6)S. L. Glashow, The hunting of the quark, New York Times 1976년 7월 18일자.
7)샘 팅과 버튼 릭터(Burton Richter, 1931‒2018)는 1974년 11월 각각 브루클린과 SLAC에서 독립적으로 거의 동시에 참 쿼크가 포함된 메손을 발견했다. 이들의 발견은 여기서 설명한 대로 와인버그의 SU(2)\(\times\)U(1) 군 모형이 매우 정합적임을 확인한 결과로서, 흔히 입자물리학의 11월 혁명으로 불린다. 이 발견 이후 와인버그의 모형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들이 발견한 메손은 두 팀이 각각 붙인 이름을 합쳐서 \(\small J/\psi\)라고 부른다. 팅과 릭터는 197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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