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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물리학, 시간의 물리학 - 연결된 시간

작성자 : 정민기 ㅣ 등록일 : 2020-08-01 ㅣ 조회수 : 507

저자약력

정민기 교수는 POSTECH 신소재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KAIST 물리학과에서 물성실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CNRS와 스위스 EPFL 연구원을 거쳐, 현재 영국 버밍엄(Birmingham) 대학 물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문분야는 자기공명을 이용한 양자물성 연구다.

평양 살던 봉이 김선달이 한양에서 온 상인들에게 대동강 물을 팔아먹던 무렵, 파리(Paris)와 빈(Wien) 등 유럽의 큰 도시에서는 하수도를 통해 시간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르 뫼히스(Le Meurice)’는 루브르 박물관 가까이에 자리 잡은 별 다섯 개 초호화 호텔이다. 1815년에 문을 열었고,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과 스페인 등 주변 유럽 왕가와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명 문화 예술인들도 애용했는데, 살바도르 달리는 무려 삼십여 년간 매년 한 달씩 이곳에 머무르곤 했다. 1880년, 호텔은 프런트와 로비, 객실 등에 백 마흔여덟 개의 시계를 새로 설치했는데, 당시로써는 흥미롭게도 그 많은 시계가 모두 꼭 같은 시간을 가리키며 동기화되어(synchronized) 있었다. 

호텔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의 상뜨-안느(Sainte-Anne) 7번가에는 각종 보일러와 피스톤, 압력 장치 및 배관으로 가득한 공장 같은 곳이 있었다. 이 모습과 다소 어울리지 않게, 다른 한쪽 방에서는 폼 나게 차려입은 방문객들이 사방 벽면을 가득 채운 멋들어진 시계들을 둘러보고 있다. 공장 같은 곳 한가운데에는 소위 ‘마스터’ 시계라고 불리는 기계 장치가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시계에 흔한 톱니바퀴 외에도 여러 배관 및 압력 장치 등이 연결되어 있다. 이 시계는 1분마다 짧은 공기압(air pressure) 신호를 만들어내도록 고안되었다. 그리고 공기압은 여러 파이프로 나뉘어 다른 쪽 방 시계들로 전달되었다. 방안의 시계들은 전달받은 공기압 신호를 통해 시간이 조율되도록 고안되었고, 따라서 모두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완벽하게 동기화된 시곗바늘 움직임의 향연을 감상하며, 가져온 주머니 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맞추거나, 마음에 드는 시계를 구매할 수도 있었다. 

르 뫼히스 호텔도 이곳에서 공기압 신호를 전달받아 시계를 동기화했다. 호텔의 시계들은 저마다 가느다란 파이프를 달고 있었고, 이 파이프들은 한데 모여 상뜨-안느의 마스터 시계까지 연결되었다. 호텔은 이렇게 시간을 전달받는 비용으로 꼭 수도세만큼 지불했다고 한다. 마스터 시계에 동기화된 시계는 호텔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파리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가로등 시계, 기차역뿐만 아니라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시계가 마스터 시계에 동기화되었다. 이를 위해 시내 곳곳으로 뻗어 나간 파이프 길이만 수십 킬로미터에 달했다. 대단한 공사였을 것 같지만,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당시 총 길이 600 km의 파리 하수도 시스템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축되었다. 

공기압으로 시계를 동기화하는 기술은 오스트리아에서 개발되어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에서 선보였다. 기술을 개발한 이들은 아예 파리로 옮겨와서 회사를 세웠고, 일 년 반에 걸친 시범 운행 끝에 파리시와 50년짜리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공공 부문과 민간 할 것 없이 파리 시내 전역으로 시간을 판매하게 된다. 공기압은 다름 아닌 소리의 원리라는 걸 떠올리면, 19세기 말 20세기 초 파리의 시간은 음속으로 달린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전기를 이용한 동기화 방법도 개발되어 있었다. 훨씬 정확하지만, 그만큼 더 비쌌다. 전기 신호는 음속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먼 거리를 이동하며 생기는 오차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반인들이 그렇게 일분일초를 다퉈가며 살 일은 없었기에, 공기압을 통한 동기화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공기압이 멀리까지 전달되면서 생기는 지연 효과도 고려하여 설계되어서, 시내 어디서든 최종 오차는 십 초 안쪽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만족한 건 아니었다. 마땅한 이유가 있건 없건, 늘 최상의 상태에 집착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사실 파리에서 공기압을 사용하는 동안 미국이나 영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이미 전기로 동기화한 시간을 공급하고 있었다.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극도로 정밀하게 동기화된 시계 연결망 속에 살고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 금융 시장에서 요청되는 시계 동기화 정확도는 만분의 일 초에 이른다. 영국 국립물리연구소(National Physical Laboratory, NPL) 등 나라별 표준 연구 기관에서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동기화 정확도는 백만 분의 일초, 또는 그 이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GPS를 통해 얻는 시간 정확도 역시 대략 이 값들 사이에 있다. 스마트 폰으로 지구 어디서든 내 위치를 수 미터 이내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러고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멋 옛날에도 마을에서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나 종소리가 있지 않았던가. 누구든 해와 달과 별을 보고 대강의 시간을 말할 수는 있었지만, 사회는 늘 모두의 시간을 하나로 동기화하려 했다. 시간은 결국 물이나 전기처럼 공공재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 아닐까.

* * * * *

“시계를 차갑게 만들고 싶어.” 작년 언젠가 옆 방 동료 교수 하나가 부탁할 게 있다며 말을 걸었다. 원자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원자시계(atomic clock)나 원자 자력계(atomic magnetometer) 등을 연구한다. “낮은 온도를 만드는 건 네가 전문이지 않아?” 내가 물었다. 실제 그는 원자 수만 개 무리의 온도를 절대온도 수천만 분의 일도까지 낮추곤 한다. 물리학계에서 한창 뜨거운 주제인 ‘차가운 원자들(cold atoms)’을 다루는 데 전문가다. 나는 돌멩이나 플라스틱 온도를 기껏해야 절대온도 수십 분의 일도로 낮춰 물성을 살피는 일을 한다. 물론, 이것도 바깥 우주의 절대온도 2.7도(섭씨 약 영하 270도)보다 훨씬 낮은, 제법 차가운 온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니, 그렇긴 한데, 이번엔 원자 무리의 온도를 낮추는 것에 더해서, 원자시계 장치 자체의 온도를 낮추고 싶어서 그래. 절대 온도 10도 정도로만 낮춰도 좋겠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좀 수상하다. 수천만 분의 일도를 손쉽게 만드는 이가, 어째서 무려 10도 정도의 ‘뜨거운’ 상태(하지만 여전히 영하 263도!)를 만드는 데 나 같은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할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친구는 특정 원자나 이온, 분자들을 대상으로 낮은 온도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나는 일반적인 물질이 가진 온도를 낮추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냉각 기술은 어떤 물질을 가져오던 절대온도 수십 분의 일도로 온도를 낮출 수 있다. 반면에, 그 친구는 손에 만져지는 물질이 아닌, 원자 하나하나가 떨어진 채 존재하는 경우, 그 온도를 수천 만 분의 일도로 낮출 수 있다. 

어찌 보면 차가운 원자들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원자들이 낮은 온도에서 한데 모이면 서로 들러붙어서 물질이 되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덕분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상 만물이 존재하고, 무수히 많은 원자가 한데 어울려 덩어리진 우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온도가 높아져서 원자 각자의 운동 에너지가 너무 커지면, 서로 한데 모여 얌전히 물질을 이룰 수가 없다. 각자의 에너지로 여기저기 움직여 다니느라 서로 신경 쓸 겨를 없이 바쁠 테니까. 다시 말해, 원자들이 물질을 이루려면, 온도가 ‘충분히’ 낮아야 한다. 우리 일상이 그렇다. 거꾸로, 온도가 낮다면, 한데 모은 원자들은 물질을 이뤄야 한다. 따라서, ‘뜨거운 원자들, 차가운 물질’은 자연스럽지만, ‘차가운 원자들’은 특별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 

원자들을 차갑게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레이저를 사용한다. 원자들을 향해 사방팔방에서 레이저를 쪼여주면 옴짝달싹 못 하면서 운동에너지가 줄어든다. 온도는 다름 아닌 평균 운동에너지를 말하기 때문에, 원자들을 꼼짝 못 하게 할수록 온도를 낮추는 셈이다. 옆 방 교수는 레이저를 사용해서 원자를 냉각하는 데 달인이지만, 금속이나 세라믹처럼 손에 잡히는 물질 자체의 온도를 낮추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나 같은 ‘물성 물리학자’의 도움을 구한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그냥 너도 우리 일에 끼면 어때?” 그 친구가 묻는다. 시계 만드는 일에 끼라고? 콜! 나름 시계 애호가로서 마다할 리 없다. 그래서 앞뒤 사정도 모른 채 발을 들이밀었는데, 알고 보니 실상은 훨씬 더 흥미로웠다. 

그는 영국 내 여러 곳의 원자시계들을 연결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소리를 통해, 파이프를 따라, 전선으로, 또 빛과 무선 통신으로 이어져 온 ‘연결된 시계’ 전통의 21세기 판이라 할 만하다. 원자시계는 1955년 영국 NPL에서 처음 만들었을 때 이미 기계식 크로노미터는 물론이고 쿼츠 시계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높은 정확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요즘 만드는 원자시계는 당시의 것보다도 무려 일억 배 더 정확하다. 우주의 나이 동안 대략 1초의 오차가 생기는 정도랄까. 세계 여러 국가의 표준 관련 기관들은 이미 수백 개의 원자시계로 연결망을 구축하여 하루 동안 십억 분의 일초의 정확도로 동기화한다.

우리는 조금 다른 목적으로 시계들을 연결하려 한다. 과학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아이디어지만, 일반인에겐 조금 생소할 듯싶다. 우리는 연결된 시계를 통해 우주의 ‘근본 상수(fundamental constants)’들이 진정한 ‘상수’인지 알아보려 한다. 우주 어디서든, 언제나 변함없는 값을 가진다고 ‘믿었던’ 것들을 검증해 보려는 것이다. 근본 상수라 부르는 것들이 실은 장소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른 ‘변수’인데, 그 변화가 너무나 작아서 지금껏 눈치채지 못하고 상수라고 믿었던 건 아닐까. 이 합리적 의심이 우리 연구의 출발점이다.

자연에 근본 상수가 몇 개인지는 사람마다 이야기하는 게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상수를 말해 보라면, (물리학자라면) 누구라도 아마 미세구조 상수(fine structure constant)와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비를 먼저 꼽을 것이다. 미세구조 상수는 전자기 상호작용의 세기를 나타내는 데, 대략 1/137로 알려져 있다. 2018년에 발표된 공식 데이터(CODATA)에 따른 더 정밀한 값은 0.0072973525693이고, 약 70억 분의 1 정도의 상대 오차가 있다. 

원자는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지구가 아닌 우주 저 멀리 어디서라도, 늘 같은 성질을 가진다(고 물리학자들은 ‘믿는다’). 양자역학에 따라 원자는 특정 에너지 상태들만 가질 수 있고, 원자가 어느 두 에너지 상태를 오갈 때 꼭 그 차이만큼의 주파수에 해당하는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할 수 있다. 현재 ‘초(second)’를 정의하는 원자시계는 해당 주파수가 마이크로파인데, 요즘엔 훨씬 높은 광학 주파수에 해당하는 에너지 차이를 사용하여 더 정밀한 원자시계를 만들 수 있다. 

원자시계의 기본 원리가 ‘양자화된(quantized) 에너지 상태’라면, 원자 말고 다른 양자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정밀한 시계 후보가 될 수 있을 테다. 실제 이온(ion)이나 분자(molecule)의 에너지 상태를 이용한 시계도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자보다도 훨씬 작은 핵(nucleus)의 에너지 상태를 이용한 소위 ‘핵 시계(nuclear clock)’도 고안되었다. 모두 양자 시계(quantum clock)라 부를 수 있다. 

원자시계만 놓고 보더라도 사용하는 원자에 따라 시계의 특성이 다르다. 예를 들어 수은 이온(Hg+) 시계는 미세구조 상수 값에 민감하지만, 알루미늄(Al+) 이온 시계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이 두 시계를 동기화시킨 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차이가 생기는지를 살피면, 미세구조 상수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해도 미세구조 상수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변한다면, 어느 이상은 변하지는 않는다는 한곗값은 얻었다. 1년 동안 시계들을 비교 관찰한 결과, 미세구조 상수는 알려진 값의 천만 분의 천억 분의 일보다 더 달라질 수 없다. 어지간해선 변화가 ‘없다’고 말해도 시비 걸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원자시계가 극도로 정밀한 만큼, 저런 작디작은 변화를 과학적으로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아예 다른 종류의 양자 시계, 즉 원자, 이온, 분자 시계들을 동기화시켜, 측정할 수 있는 변화의 정밀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자세한 사항은 영업 비밀이란 핑계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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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얼마나 더 잘게 나누고(divide), 널리 공평하게 나누는가(distribute)는 문명의 척도가 된다. 시계에 분침이 더해지고 초침이 더해질 때, 사회에 어떤 파급 효과가 생겨날지 처음부터 자명했던 적은 없었다. 쓸데없이 정확하고 정밀하게 만들려는 누군가의 집착이 수십 수백 년 뒤에 해상을 통한 동서양의 만남, 인공위성 띄우기와 달 탐험, 손에 쥔 GPS 지도 등으로 꽃 피었다. 순수 과학은 누구나 먹기 좋은 열매를 가져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미세구조 상수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할 수도,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에는 변했지만, 지금은 변하지 않을지도, 아니면 어찌 됐든 너무 작은 변화라 인류가 영원히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가보지 않으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게 순수 과학일 테니까.


*아태이론물리센터의 <크로스로드>지와의 상호 협약에 따라 크로스로드에 게재되는 원고를 본 칼럼에 게재합니다. 본 원고의 저작권은 아태이론물리센터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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