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인슈타인의 한계를 넘어서
중력파 과학에도 인공지능이?!
작성자 : 김경민 ㅣ 등록일 : 2021-07-12 ㅣ 조회수 : 2,309 ㅣ DOI : 10.3938/PhiT.30.018
김경민 박사는 2015년 한양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홍콩중문대학, 한국천문연구원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2009년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회원으로 라이고 과학 협력단에 가입하였고, 2010년부터 중력파 데이터 분석 및 천체물리 연구에 다양한 기계학습 알고리즘들을 활용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kyungmin.kim.for.gw@gmail.com)
Artificial Intelligence in Gravitational-Wave Science
Kyungmin KIM
Artificial intelligence gaining popularity not only in the computational engineering industry but also in fundamental science. For the realization of artificial intelligence, numerous machine learning algorithms have been introduced and tested for their applicability. Even in the field of gravitational-wave science, the application of machine learning has been widely studied to enhance conventional analyses in all disciplines from searching for gravitational-wave signals to characterizing noise transients. In this article, I briefly introduce the current status of gravitational-wave science and summarize research topics in which machine learning is applied to each discipline of gravitational-wave science.
들어가며
‘인공지능’이라는 표제어는 최근 몇 년 사이 공학이나 과학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특히 2016년 3월에 있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AlphaGo)의 대결을 통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표제어가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패배했다는 결과를 확인한 순간, 필자처럼 인공지능의 개발 수준에 감탄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아이, 로봇’과 같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상의 인공지능 시스템들을 떠올리며 머지않은 미래에 맞이할 인공지능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자동차 자율주행 시스템의 작동 오류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국내외의 뉴스거리로 다뤄지는 것 역시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걱정 또한 갖게 하는 다양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조금만 이해한다면, 그러한 막연한 상상으로부터 생기는 걱정은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혹은 가까운 미래에 구현될 대부분의 인공지능은 “잘 준비된 데이터로 잘 훈련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진다.”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파고의 경우도, 먼저 바둑 대국에 특화되도록 짜여진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수많은 바둑 대국들의 복기 기록들(데이터)을 이용해 훈련시키고, 다양한 수준의 실제 바둑 기사들과의 대국을 거치며 초기에 훈련된 알고리즘을 ‘매우 잘’ 개선한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목적에 부합하는 데이터의 준비와 함께 그 목적의 구현에 적합한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선택과 그 알고리즘의 적절한 훈련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는 인공지능의 성능은 인간의 지성과 감각기관을 통해 이뤄지던 것들 중 극히 일부를 대체하는 수준이고, 다행히도 인간이 충분히 그 성능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같은 맥락으로, 중력파 과학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도 관측 혹은 실험 데이터의 양이 거대해지는 ‘빅데이터(Big Data)’ 시대를 맞이하게 됨에 따라, 인간의 능력만으로 하나하나의 데이터를 일일이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데이터가 쌓여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지능의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중력파 과학의 경우 대략 10년 전부터 중력파 데이터의 분석 및 그를 통한 과학 연구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구현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난 10년간 중력파 데이터를 활용한 중력파 과학 연구에 다양한 기계학습 알고리즘들이 활용되어 온 사례들을 정리한 논문1)의 내용을 요약하며 해당 연구 분야의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전의 물리학과 첨단기술2)3)에 실린 글들에서 중력파에 대한 물리적 설명, 중력파 연구의 역사 및 중력파 검출 실험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을 다뤘기에, 이 글에 등장하는 중력파 관련 용어나 설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은 예전의 글들과 그 글들에 포함된 참고문헌들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중력파 관측의 현황
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물체의 가속 운동에서 발생되어 우주의 시공간을 통해 전파하는 파동이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에서 예측한 것들 중, 일반상대론이 탄생한 1916년 이후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를 때까지도 인류가 그 존재를 검증하지 못한, 아인슈타인이 남겨준 숙제 중 하나로 남아있었다.
한국 시간으로 2016년 2월 12일 새벽에 중력파의 존재가 과학적 사실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 전인 2014년 가을에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 ‘중력파’라는 표제어가 대중에 먼저 알려질 뻔 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최초 기획자 중 한 명이 바로 미국 칼텍의 킵 손이었고, 그가 처음에 구상했던 설정에선 토성 옆에서 매우 강력한 중력파 신호를 라이고(LIGO)를 통해 관측하고 그 신호의 분석을 통해 토성 옆에 웜홀(wormhole)이 생겨난 것을 인류가 알게 된다는 설정을 했지만, 이 영화의 감독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 설정은 영화적 장치로는 그다지 감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아쉽게도 실제 영화에선 중력파 신호를 관측하는 내용은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4) 한편, 이 영화가 개봉한 시기는 본 필자가 한창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던 때이기도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학계에서는 중력파 관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필자는 언젠가는 중력파의 존재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희망을 갖고 학위논문을 마무리지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머지않은 2015년 9월 14일에 미국 워싱턴주와 루이지애나주에 각각 하나씩 설치된 라이고(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ertory, LIGO) 중력파 검출기의 데이터에 태양질량의 약 36배와 29배의 질량을 가지는 두 개의 블랙홀들이 상호 공전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중력파 신호(GW150914)5)가 기록되며, 결국은 아인슈타인이 남겨 준 숙제 하나를 후대 과학자들이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최초로 직접 관측에 성공한 이 중력파 신호는 위에서 언급한 킵 손과 함께 라이너 바이스와 배리 배리시가 ‘라이고의 기술을 발전시켜 중력파 최초 검출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3)
GW150914의 관측을 포함해 지금까지 세 번의 관측가동을 거치며 약 50개 중력파 신호들을 관측하는 것에 성공했는데, 세 번째 관측수행(O3)의 전반부까지의 관측한 신호들의 물리적 특성 값과 통계적 결과 값 등에 대한 정보는 최근 공개된 GWTC-2(the Gravitational-Wave Transient Catalog 2)6)에 요약정리되어 있다. 참고로 GWTC-2에 포함된 중력파 신호들은 모두 블랙홀 또는 중성자별이 포함된 쌍성계의 병합과정에서 발생한 신호들이다. 물론 쌍성계의 병합과정 이외에도 중력파를 발생시킬 것으로 예측되는 천체 혹은 천체현상은 다양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중력파가 만들어낸 시공간의 요동의 세기가 20 Hz와 1000 Hz 사이에서 적어도 10-22 / \(\small \sqrt{\mathrm Hz}\) 이상이 되는 정도의 세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신호들만 관측이 가능한 현재 지상 중력파 검출기들의 감도한계[그림 1]의 영향이 크다.
이처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아주 작은 세기의 중력파 신호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여러 내외재적 물리량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내는 중력파의 특성에 대한 물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매우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그 결과에 대한 꼼꼼한 검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에 더해, 중력파 검출기를 구성하는 다양한 실험장치들로 인해 발생하는 잡음신호에 더해 검출기 주변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잡음신호가 중력파 신호 관측에 직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러한 잡음신호들을 최대한 제거하거나 억제한 뒤에도 남는 잡음신호 분석을 통해 잡음신호에 대한 상세한 이해를 하는 것 또한 중력파 신호를 찾는 데이터 분석과 검증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력파 과학 연구와 기계학습 알고리즘
지금까지 관측에 성공한 중력파 신호들에 대한 분석과 그 신호가 관측된 시간에 해당하는 중력파 데이터에 섞여있는 잡음신호에 대한 분석은 대부분 전통적인 신호처리기법과 통계학적인 분석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과거에는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주로 개발되고 활용되어 온 기계학습법이 오늘날에는 대량의 관측 혹은 실험 데이터가 주어지고 그러한 대용량 데이터의 분석이 필수인 다양한 순수과학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고 동시에 수많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 절에서는 최근 출판된 총설 논문1)에 정리된, 기계학습 알고리즘들이 중력파 과학 연구에 활용되어 온 사례들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먼저 중력파 관측을 위한 과학 연구에서 지난 10여 년간 출판한 전체 논문의 수는 참고문헌 [1]에 정리된 논문들을 기준으로 약 60여 편7)에 이른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매해 그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최근에 출판된 논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활용된 중력파 과학의 분야는 [그림 3]에 보여지는 것처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중력파 과학에서 다루는 전 분야라고 볼 수 있다. 네 가지 분야들 중 가장 많은 논문이 출판된 분야는 잡음신호 분석 등을 통해 중력파 데이터의 품질을 파악하는 분야(Data Quality, DQ)이고, 그 다음은 중력파 신호의 식별을 위한 탐색 분야(search)이다. 다음으로는 검출한 중력파 신호의 모수를 추정하고 추정한 물리량을 이용해 해당하는 천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천체물리 연구 분야(astro)와 밀집쌍성계에서 방출된 중력파 신호의 검출을 위한 중력파의 파형 연구 분야(waveform)와 관련된 논문들의 수가 앞선 두 분야들을 뒤따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각 분야별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활용이 연구되어 온 주제 혹은 앞으로 그 활용이 각 분야별 데이터 분석의 정확도나 성능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연구 주제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특히 한국 연구자들이 기여한 부분에 대해선 조금 더 자세히 다룬다.
1. 데이터 품질 분석 분야
데이터 품질 분석 분야에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연구들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글리치(glitch)라고도 불리는 비정형의 순변(transient)잡음을 파악하고 글리치들을 제거하거나 중력파 신호 검출에 끼치는 영향을 최대한 억제하는 데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 1) 실제 중력파 신호를 찾기 위해 시계열(time-series) 데이터를 기록하는 중력파 채널에서 글리치를 판별하는 것, 2) 각종 잡음신호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보조(auxiliary) 채널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글리치를 판별하는 것, 그리고 3) 식별된 잡음신호를 중력파 채널 데이터에서 제거하는 것(denoising)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위의 세 연구 주제별 논문의 수와 비율은 [그림 4]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비슷한 비중으로 연구되고 있는 경향을 나타낸다.
특히 두 번째 주제와 관련해서 2013년에 출판된 논문8)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의 연구자들이 공동연구를 진행하여 해당 주제에 대한 원전이 된 첫 번째 논문으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한 데이터 분류에 전통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세 가지 대표적인 알고리즘들인 ‘인공신경망(neural networks)’, ‘랜덤 포레스트(random forest)’, ‘서포트 벡터 머신(support vector machine)’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봤다. 특히 본 필자를 포함한 한국 연구자들은 인공신경망의 적용과 성능 평가를 전담하여 다른 알고리즘들과 유사하고 기존에 적용하던 분석 방법에 준하는 성능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논문의 결과는 현재 중력파 검출기에서 보조채널 데이터에 기록되는 글리치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분석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기초가 되었다.
2. 중력파 신호 탐색 분야
중력파 신호를 발생시킨 중력파원 천체 혹은 천체현상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각각은 1) 밀집쌍성계의 병합 운동(compact binary coalescence, CBC), 2) 초신성 폭발이나 감마선 폭발같은 천체 현상이 발생할 때와 유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발형(burst), 3) 맥동성과 같이 지속적으로 거의 일정한 신호를 방출하는 지속형(continuous),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여러 중력파원에서 각각 발생한 신호들이 마치 배경잡음처럼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경우(stochastic background)이다. 중력파 신호의 탐색에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연구는 모두 위의 네 가지 중력파원에서 발생한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의 성능을 향상시켜 각 중력파원에서 발생된 중력파 신호들을 더 낮은 오경보 확률로 더 많이 검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분야의 연구 논문들의 수와 각 주제별 비율은 [그림 5]에 정리했는데, 밀집쌍성계와 관련된 주제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배경잡음 신호에 대한 주제는 아직까지는 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경향을 볼 수 있다.
위의 네 가지 중력파원들과 관련된 주제들 중 밀집쌍성계에서 방출된 중력파 신호 탐색 주제는 지금까지 본 필자를 포함한 한국 연구자들이 주도한 연구 결과가 가장 많은 주제로, 그 예로는, GW170817과 GRB170817의 동시 관측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짧은 감마선 폭발의 발생원이 중성자별 쌍성계의 병합으로 예측된 모델을 기반으로 감마선 폭발 관측 정보를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중력파 신호를 찾는 것에 인공신경망을 적용한 연구,9) 밀집쌍성계에서 발생한 중력파 신호를 실시간으로 탐색하는 분석 소프트웨어의 성능 향상 가능성을 인공신경망과 랜덤 포레스트를 활용하여 살펴본 연구,10) 그리고 밀집쌍성계에서 발생한 중력파가 무거운 천체 주변을 지날 때 마치 전자기파의 중력렌즈 현상과 유사한 중력렌즈 현상의 정보를 담은 중력파 신호의 식별에 전통적인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을 확장한 딥 러닝(deep learning) 알고리즘 중 하나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본 연구11) 등이 있다.
3. 중력파 천체물리 연구 분야
중력파 천체물리 분야에서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는 주제로는 1) 중력파원의 물리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모수를 추정하는 정확도의 향상, 2) 모수추정의 정확도의 향상에 더해 모수추정에 걸리는 계산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 3) 각 중력파원들에 대한 발생 빈도 혹은 각 중력파원들에서 발생한 중력파의 관측 빈도를 추정하여 모집단인 중력파원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수행하는 연구, 그리고 끝으로 4) 이렇게 추정된 관측 정보를 전자기파 관측 망원경들로 전달하여 전자기파의 후속 관측을 유도하고 관측한 중력파 신호와 상호연관성을 가진 전자기파를 관측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앞선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중력파 천체물리 분야의 주제들에 대해 지금까지 출판된 논문들에 대한 통계치는 [그림 6]에 제시했는데, 모수추정의 방법으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주제에 해당하는 연구들이 지금까지는 압도적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본 필자와 공동연구자들은 앞서 언급한 참고문헌 [11]에서 중력렌즈 현상의 정보를 담은 중력파 신호의 분류(classification) 분석에 더해 회귀(regression) 분석을 통한 중력파원의 모수추정에 딥러닝 알고리즘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는 연구의 결과도 함께 정리했다.
4. 중력파 파형 연구 분야
앞선 중력파 신호 탐색 분야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표적인 중력파원은 네 가지의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중 밀집쌍성계에서 발생된 중력파 신호의 탐색에는, 이론적 혹은 현상론적 중력파형 모형들을 기반으로 생성한 형판(template) 파형들을 통한 분석을 수행한다. 이 분석에서는 중력파 데이터 속에 존재하는 실제 중력파 신호와의 상관관계를 신호대비잡음비율(signal-to-noise ratio)로 계산하여 형판 파형들 중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파형을 찾고, 그 형판 파형의 생성에 사용된 물리량을 통해 중력파 후보 신호를 찾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만약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형판 파형의 정확도를 높이고 데이터 분석의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현할 수 있다면, 해당 분야의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기대하는 바를 구현하기 위해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한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한 논문들에 대한 통계치는 [그림 7]과 같다.
그림 7에 포함된 논문들 외에도, 본 필자를 포함한 한국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진은, 쌍성계를 이루는 밀집천체들 간의 거리가 비교적 먼 시점에 발생되는 중력파의 초기 양상으로부터 두 천체가 병합과 안정화를 거치는 시점에 발생되는 중력파의 중/후반부 양상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회귀성 인공신경망(recurrent neural networks) 알고리즘을 개선한 새로운 딥러닝 모형을 개발하고, 이 새로운 모형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는 연구12)를 수행하였고, 이를 통해 기존에 주로 연구해 오던 분야를 넘어 중력파 파형 연구 분야로도 연구의 범위를 확대하게 되었다.
마치며
이 글에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행되어 온 다양한 중력파 과학 연구 분야에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연구들의 주제와 사례들을 요약하여 소개했다. 그림 1에서도 확인했듯, 최근에 이르러 관련 연구들을 소개하는 논문들의 수가 급증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라이고와 비르고(Virgo)를 통한 세 번의 관측가동을 거치며 약간씩 성능을 개선한 중력파 검출기를 이용해 새로운 관측가동을 수행함에 따라, 관측한 중력파 신호의 개수가 점차 늘어난 것과 상관관계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점차 중력파 신호 관측이 일상적인 일처럼 여겨지고 있고, 기존의 신호들에 비해 특별히 새로운 특성을 보이는 중력파 신호가 관측되지 않는 이상, 인류 최초로 직접 관측에 성공한 신호인 GW150914처럼 그 관측 사실을 엄밀히 확인하기 위해 관측에 사용한 방법과 결과를 약 5개월에 걸쳐 검증하는 것은, 매 신호마다 다른 다양한 특성을 파악하는 연구엔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연구방법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라이고나 비르고, 카그라(KAGRA) 같은 기존의 지상 중력파 검출기들도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선하고 있고, 그와 별도로 차세대 중력파 검출기를 준비하는 계획도 꾸준히 논의되고 그 방향이 구체화되고 있다. 만약 그러한 성능 개선이나 차세대 검출기의 도입이 예정대로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관측될 중력파 신호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대용량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에는 분명 기존의 방법을 탈피한 새로운 방법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머지않은 미래에 벌어질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본 필자는 지금이 바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중력파 데이터 분석을 인공지능화하는 것을 준비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본 필자를 포함한 한국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해당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어 지금까지 관련 연구를 지속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에 더해 연구주제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추구하고 있다. 물론 외국에서도 많은 연구자들과 연구그룹들이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중력파 과학의 발전을 추구하는 연구를 지속하고는 있지만, 다뤄지지 않은 연구 주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현 시점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와 유사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중력파 과학의 ‘우주 개척 시대’라 감히 칭해본다.
하지만, 중력파 과학은 분명 과학 연구의 한 분야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통한 인공지능의 구현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과학자는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그저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거나 밝혀내길 원하는 과학적 사실에 조금은 더 손쉽게 도달하는데 유용한 도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누가 알겠는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튼튼하고 손질이 잘 된 삽과 곡괭이로 땅을 잘 골라 파 금맥을 발견해서 인생역전을 이뤄낸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 ‘우주 개척 시대’에 중력파와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주 곳곳을 인내심을 가지고 탐사하다보면, 인류가 아직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한 우주의 비밀들을 밝혀낼 엄청난 금맥을 언젠가는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 각주
- 1)E. Cuoco et al., Mach. Learn.: Sci. Technol. 2, 011002 (2021).
- 2)Hyung Mok Lee et al., Phys. High Technol. 25(3), 2-43 (2016).
- 3)John J. Oh et al., Phys. High Technol. 26(11), 3-20 (2017).
- 4)Kip Thorne, The Science of Interstellar (W. W. Norton & Company, New York, USA, 2014).
- 5)B. P. Abbott et al., Phys. Rev. Lett. 116, 22, 221101 (2016).
- 6)R. Abbott et al., Phys. Rev. X 11, 021053 (2021).
- 7)이 숫자를 포함하여 이 글에서 언급하는 각 세부 분야별 논문들에 대한 통계자료는 참고문헌 [1]이 정식 출판되기 전 arXiv에 선공개됐던 2020년 5월까지 출판된 논문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 8)R. Biswas et al., Phys. Rev. D 88, 062003 (2013).
- 9)K. Kim et al., Class. Quantum Grav. 32, 24, 245002 (2015).
- 10)K. Kim et al., Phys. Rev. D 101(8), 083006 (2020).
- 11)K. Kim et al., ApJ 915, 2, 119 (2021).
- 12)J. Lee et al., Phys. Rev. D 103, 12, 123023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