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돈에도 방정식이 있다
행위자 기반 모형의 이해와 활용
작성자 : 권오규·김영진·백승기·정형채 ㅣ 등록일 : 2022-07-07 ㅣ 조회수 : 1,833 ㅣ DOI : 10.3938/PhiT.31.024
권오규 연구원은 2006년 KAIST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ABM으로 감염병 확산 시뮬레이션 모형을 개발하고 있다. (okw@nims.re.kr)
김영진 연구원은 2019년 한앙대 응용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에너지공과대학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kimyoungjin06@kentech.ac.kr)
백승기 교수는 2006년 KAIST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13년 부경대학교 물리학과에 임용되었으며 2022년부터 과학컴퓨팅학과 교수로서 통계물리학과 게임이론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seungki@pknu.ac.kr)
정형채 교수는 1994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8년부터 세종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복잡계와 진화게임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hcj@sejong.ac.kr)
Understanding and Applications of Agent-based Model
Okyu KWON, Young Jin KIM, Seung Ki BAEK and Hyeong-Chai JEONG
Agent-based modeling (ABM) is an interdisciplinary approach to understand macroscopic patterns of a large system, based on massive computation of its interacting constituents (i.e., agents). We explain when this approach is especially useful, with providing two game-theoretic examples: The first example is an analytically intractable model system, although the agents’ decision rules are easily programmable, for which ABM is the only feasible methodology. The second example argues that the payoff structure among agents can also be calculated from their microscopic interactions. These examples show that ABM is a powerful tool with a high degree of flexibility, but also that one has to carefully choose the level of complexity in a model because this choice directly affects the computational burden as well as the applicability of the model.
들어가며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은 비록 관찰 대상은 상이하지만 꾸준히 과학적 세계관과 수학적 모형을 공유해 왔다. 수많은 개체들의 미시적 상호작용으로부터 거시적 창발 현상을 이해하는 복잡계 과학은 자연 및 사회 현상을 인식하는 통찰력을 제공해왔으며, 계산적 방법론으로서 행위자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ing, ABM)을 발전시켜 왔다.
최근 10여 년간 빅데이터가 과학 및 공학의 주요 이슈가 되면서 데이터 과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자연과 사회라는 복잡한 시스템이 산출하는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발견해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ABM은 시스템의 내부적 작동 원리를 모사 및 계산함으로써 관찰된 패턴을 미시적으로 설명하는 상보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양쪽 모두 오늘날 급격하게 증가한 컴퓨팅 자원을 적극 활용한 연구 기법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며, 그 중요성 역시 함께 커지고 있다.
행위자 기반 모형
뉴턴은 물체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미분방정식 기반 모형을 개발하였고, 이 수학적 모형으로 힘과 운동의 작동 방식을 성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의 모든 변화와 움직임을 기계적인 작동 방식으로 이해하는 고전역학은 미분방정식 기반의 결정론적 수학 모형을 뿌리에 두고 있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자연 현상뿐 아니라 경제 및 사회 현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1) 경제학 및 사회학도 미분방정식이라는 결정론적 모형을 수용함으로 과학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물리학은 비선형 동역학을 통해 결정론적 모형의 예측 불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수많은 개체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창발적 거동을 탐구하는 복잡계 과학이라는 세계관으로 빠르게 시야를 넓혀왔다. 수학적 원리에 기반한 분석적 탐구의 전통을 깨고 비선형 동역학과 복잡계 과학이라는 계산적 탐구가 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라는 강력한 계산 도구의 등장 때문이었다. 처음에 컴퓨터는 계산하기 어려운 수학적 모형의 근사적 답을 얻기 위한 보조적인 도구로만 여겨져 왔으나, 반복되는 규칙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성적 메커니즘의 원리를 인식하는 주도적 도구로 차츰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일찍이 에릭 보나보(E. Bonabeau)가 말한 것처럼,2) ABM은 어떤 기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고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즉 개별 행위자(agent)들의 시각에서 시스템을 기술한다는 것이 ABM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행위자들은 자신이 놓인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맞추어 각자의 규칙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대개 가정된다. 개별 행위자의 행동 규칙을 기술할 수 있다면 전통적인 미분방정식도 ABM의 틀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미분방정식을 거시적인 유체역학적 근사(hydrodynamic approximation)의 결과로 얻어내기 때문에, 미분방정식을 활용한 접근법이 미시적인 ABM과 대비될 때가 많다. 보나보는 연구자들이 ABM을 필요로 하는 상황들을 다음처럼 들고 있다:
- 개인의 행동에 문턱값(threshold)이나 if-then 조건문 등의 비선형성과 불연속성이 있어서 미분방정식을 사용한 기술이 어려울 때.
-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에 기억, 경로의존성, 이력현상, 시간에 따른 상관관계 등 비(非)마르코프적인 성질이 있을 때. 여기에는 학습과 적응 같은 과정도 포함된다.
- 균일한 섞임이라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불균일하고 네트워크의 효과가 클 때.
- 평균 주위로의 요동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며 그것이 시스템의 동역학에 의해 증폭될 수 있을 때.
ABM의 초창기 예로서는 폰노이만의 세포자동자(cellular automata)를 들 수 있다. 또 비록 스스로 컴퓨터를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토마스 셸링의 분리(segregation) 모형 역시 의사결정하는 행위자들에게 약간의 동종선호를 넣어준 것만으로 거시적인 분리가 나타남을 보여주므로 ABM의 맥락에서 많은 후속 연구가 있었다. 오늘날의 의미에서는 로버트 악셀로드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토너먼트, 그리고 문화의 보급에 관한 소위 악셀로드 모형, 그리고 새 떼를 묘사하기 위한 크레이그 레이놀즈의 보이드(Boid) 모형5) 등이 ABM의 고전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셸링은 경제학자이며 악셀로드는 정치학자라는 데서 볼 수 있듯이, ABM은 사회과학 영역에서 활발히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통계물리학 역시 거시적인 패턴을 미시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설명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으므로 ABM은 자연스럽게 물리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접점을 제공하게 되었다.3) 왜 특별한 이유 없이 교통 정체가 발생하는지?6) 왜 빈부의 격차는 발생하는지?7) 왜 정치적 양극화는 발생하는지?8) 등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고 체감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물리학자들이 ABM을 통해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ABM의 활용처는 생태학적인 측면인데, 동물군집의 거동을 예측하는 데 ABM을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함의를 이끌어 내고 있다.4) 물리학에서도 스스로 움직이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비평형계인 능동물질(active matter)의 연구는 ABM과 많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행위자 기반 모형의 활용
1. 협동의 창발
생존 경쟁하는 개체 사이에서 어떻게 이타성이 발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19세기 초부터 자연과학, 경제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주제이다. 다윈도 이 문제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1871년 집단 선택 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협조하는 집단에 속한 개체가 이기적인 집단에 속한 개체보다 적응도가 커서 협조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1960년경 게임이론이 진화에 적용되면서 종을 위해 희생하는 개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타적 집단이 존재해도, 집단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 개체가 발생하면 그 후손이 더 많이 번식하게 된다. 따라서 진화 게임 이론에 의하면, 이타적인 집단도 시간이 지나면 이기적인 집단으로 진화하게 되어 협조 집단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구성원들 간에 다양한 협조가 이루어지는 집단을 쉽게 발견한다. 고등 생물체를 이루는 (암 세포가 아닌) 대부분의 세포들은 자신의 증식을 조절하여 조직을 만든다. 또 조직이 모여 기관을 만들고 더 나아가 개체를 만들 때도 서로간의 강력한 협조가 이루어진다. 사회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행동이 필수적이다. 생존 경쟁하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어떻게 협조 사회로 진화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진화 게임 이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행위자 기반 모형은 진화 게임 동역학을 연구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여러 종(혹은 전략)으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각 종의 개체 수의 변화를 연구하는 진화 동역학은 복제자 동역학과 ABM으로 연구되어 왔다. 복제자 동역학은 각 종의 비율을 미분방정식으로 기술하는 반면, ABM은 유한 크기 집단에서 각 개체 하나하나의 행동을 기술하는데, 특히 최근에는 집단과 개인을 위한 행동이 서로 상충되는 사회적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협조 진화가 이루어지는지 설명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2000년대 초, 하버드의 수리생물학 교수인 마틴 노왁(Martin Nowak)은 지난 연구들을 정리하여 협동의 창발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메커니즘을 정리하여 제시하고, 이를 대중들도 읽기 쉽도록 교양서적 ‘초협력자’9)를 출판하였다. 그 메커니즘 중 하나가 바로 간접 호혜성인데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가 상대의 “평판”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평판을 알 수 있어 평판이 높은 상대에게만 선택적으로 협조하는 전략을 쓰면 범지역적인 협동의 창발이 가능하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다.
협동의 창발을 설명하기 위해 간단한 모형을 고려해보자. 모형에서 각 행위자는 각자의 평판 \(\small r\)과 전략 \(\small s\)를 가지고 있다. 평판 \(\small r\)은 지금까지 각 행위자가 얼마나 협력했는지를 나타내며, 전략 \(\small s\)는 내가 협력하기 위한 상대 평판에 대한 문턱값이다. 즉, 상대의 평판이 내 전략보다 높다면 상대방에게 협력을 하게 된다. 행위자들은 주기경계조건을 고려하는 2차원 평면에서 움직이며 행동반경 \(\small R\) 내의 다른 행위자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협력/배반을 한다.
협력하는 사람은 비용 \(\small c\)를 지불하여,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각각 \(\small b/2\)의 이득을 준다. 따라서 양쪽 모두 협력하는 경우 \(\small b-2\)의 효용을, 누구도 협력하지 않는 경우 0의 효용을 한 쪽만 협력하는 경우 배반자는 \(\small b/2\), 협력자는 \(\small b/2-c\)의 효용을 얻는다. 한 단계(시간 \(\small t\))에서 모든 게임을 마친 뒤, 게임을 한 상대방의 총 획득 효용을 알 수 있고, 다음 시간 \(\small t+1\)에는 가장 높은 효용을 가진 상대방의 전략을 따라하며, 각자의 평판은 지금까지의 평판과 이번 단계 게임에서 협조한 비율의 평균으로 갱신한다.
이 모델에서 \(\small R\)이 충분히 크다면, 모두가 서로 게임을 하기 때문에, 평균장 이론으로 기술될 수 있다. 반대로, \(\small R\)이 아주 작다면, 각 행위자들은 매 순간 매우 낮은 확률로 우연히 만나는 상대방과만 게임을 하게 된다. \(\small R\)이 적절한 값을 가진다면, 무작위 보행을 하는 행위자들은 주변의 행위자들과 어느 정도 크기의 군집을 이루며 행동하게 된다.
[그림 1]은 초기 상태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집단의 일부 모습을 보여준다. 행위자의 초기 위치는 평면 내의 무작위 지점으로 배정되고, 초기 전략은 균일분포에서 균일하게 추출한 무작위 값으로 배당한다. 그림 1의 네트워크에서 노드는 게임 행위자이고, 노드를 연결하는 연결선은 서로 행동 반경 내에 위치하여 게임을 하는 경우를 나타낸다. 양쪽 행위자의 행동에 따라 세 가지 연결선이 가능하다. 상호 협력을 한 경우 초록색, 서로 배반을 한 경우는 회색, 한 쪽만 협력을 한 경우는 협력자에서 배반자 쪽으로 주황색 화살선을 그린다. 노드의 색깔은 평판(왼쪽)이나 전략(오른쪽)을 뜻하며 파랄수록 높은 값을 가진다. 왼쪽에 파란색으로 표시된 큰 군집은 전체적으로 높은 평판 \(\small r\)을 가진 집단으로 오른쪽의 해당 노드를 보면 전략 \(\small s\)는 비교적 낮게 유지됨을 알 수 있다. 높은 전략을 가지고 있는 행위자들은 배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낮은 평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행위자 모형에서의 핵심은, 초기에 균일하게 모든 행위자가 퍼져있을 때에는 배반하는 편이 확률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배반이 성행하게 된다. 하지만 어디선가 협력하는 군집이 생기고 자라나면서, 이들이 충분히 견고한 상태에 돌입하게 되면, 더 비협력적인 전략들이 오더라도 그 견고함을 부수지 못한다.
[그림 2]는 행동반경 \(\small R\)에 따른 정상상태에서의 평균 협동율 \(\small F^C\)를 보여준다. N 다음에 있는 숫자는 집단의 크기를 나타낸다. 속이 비어있는 기호는 무작위 보행을 하는 경우이고, 속이 채워져 있는 기호는 적응보행을 하는 경우이다. 즉, N128A는 행위자 수가 128개이며 적응보행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적응보행이란 현 위치에서 주변 이웃의 절반 이상이 협력한다면 움직이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이동하는 방식이다.10)11) 그림 2를 보면 기본적으로 행동반경 \(\small R\)이 큰 경우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일반적으로 적응 보행이 무작위 보행보다 협조가 더 잘 이루어진다. 적응 보행의 핵심은 상대방이 협력하면 그대로 머무르지만, 배반하는 경우 도주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크레인즈(Kraines)가 1989년 제시한 파블로프라는 전략과 유사하다.12) 파블로프는 매우 단순한 전략으로, 결과가 좋으면 행동을 유지하고,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행동을 바꾼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파블로프는 승유패변(Win-Stay, Lose-Shift) 전략이라 불리기도 한다. 파블로프 전략은 많은 경우에 협력적인 상태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유사하게, 이 파블로프 보행(적응보행)은 그 이동방식 자체가 협력의 창발을 더 견고하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무작위 보행보다 더 협력 사회로 진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small R\)이 매우 작을 때에도, 효과적으로 협력적인 군집을 만들 수 있어, 협력 창발에 미치는 적응 보행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집단 사냥 모형
ABM은 모형의 측면에서 매우 유연하기 때문에 어떤 복잡성의 수준에서 작업할 것인지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앞의 예에서는 게임을 했을 때의 이득과 비용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ABM을 통해 그러한 가정이 어떤 미시적인 근거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슴 사냥(stag hunt)’ 게임의 이름처럼 게임 참여자가 얻는 이득과 지불하는 비용은 종종 사냥의 비유로 주어지곤 한다. 만일 [그림 3]처럼 둥근 디스크 형태의 지역에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붉은색의 사냥꾼들이 파란색의 사냥감을 쫓아가서 포획한다면 사냥감의 숫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의 100마리에서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서 사냥감은 일정한 속력 \(\small v_T =1\)로 움직이는데, 사냥꾼 혹은 디스크의 경계가 자신으로부터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면 그 중 제일 가까운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을 택한다. 사냥꾼 역시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는데, 무한정 추격을 하지는 못하고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성질도 집어넣었다. 사냥꾼이 직접 추격하는 전략(Direct chaising strategy, DCS)을 택할 경우에는 단순히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사냥감을 쫓아간다. 반면 집단으로 추격하는 전략(Group chasing strategy, GCS)을 택하면 일정 거리 안에 있는 다른 사냥꾼들까지 고려하여 사냥감이 자신을 포함한 사냥꾼 무리의 중심에 놓이게끔 자신의 운동 방향을 결정한다. 즉 GCS를 사용하는 사냥꾼은 다른 사냥꾼들이 사냥감으로 접근할 때 자신은 사냥감을 더 잘 포위하기 위해 오히려 물러날 때도 있다는 뜻이다.
사냥꾼의 속력은 사냥감의 속력보다 느리며, GCS를 택할 경우 인지적 부담을 감안해 더욱 속력을 느리게 설정한다(\(\small v_{GC} < v_{DC} < v_T\)). 그런데 DCS와 GCS를 비교해보면 GCS의 사냥효율이 월등히 좋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4]에서 \(\small v_{DC} = \) 0.95이며 \(\small v_{GC}\)가 0.7 근방까지 느려진다고 해도 사냥감의 수는 GCS의 경우에 훨씬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이는 모두가 DCS 혹은 모두가 GCS를 사용할 때의 결과인데, 만일 두 사냥꾼이 함께 사냥하는 경우라면 어떤 전략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그러면 둘 다 GCS로 시작한다고 했을 때에 한 명이 DCS로 전환할 경우 다른 사람으로부터 계속 양보를 받기 때문에 더 유리해진다. 그렇다고 둘 다 DCS로 자기 몫을 챙기려고 하면 사냥 결과는 매우 안 좋아진다. 예비적인 계산 결과로 볼 때에 사냥꾼들이 처한 상황은 매-비둘기(Hawk-Dove) 게임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즉 GCS는 일종의 비둘기파 전략이고 DCS는 매파 전략이다. 비둘기는 매에게 쫓겨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매파가 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사전에 각 전략의 보수를 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미시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보수가 계산되는 것이라는 데 이러한 ABM 접근법의 의의가 있다. 이는 게임의 구조가 상호작용의 어떤 특징에 의해 좌우되는지 알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맺음말
이상으로 ABM의 간략한 소개와 몇 가지 연구의 예를 살펴보았다. ABM의 가장 큰 장점은 행위자의 행동을 기술하는 데 비선형성과 불연속성이 있어도 컴퓨터로 코드화만 할 수 있다면 큰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유연한 모형화를 통해 거시적 패턴을 결정짓는 원리가 무엇인지 세밀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ABM이 가지는 유연성은 양날의 검일 수도 있다. 즉 복잡성의 수준을 다양하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같은 현상을 다루면서도 모형의 복잡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는 자신의 결과가 정책 결정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정량적인 예측을 주는지 아니면 순전히 정성적인 일치 수준으로만 바라보아야 할지 가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과를 보고할 때 모형에 사용된 가정들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미시적인 수준으로 들어갈수록 계산 수행을 위해 선택해야 할 맺음변수의 수가 늘어난다는 점은 ABM의 이론적 장애물이다. 맺음변수의 수가 늘어날수록 상태공간의 공간은 지수함수적으로 팽창하고 이를 빈틈없이 조사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ABM의 특성상 시스템은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초기조건에 매우 강하게 의존성을 보일 수도 있는데 많은 수의 행위자가 연루된 문제에서 모든 가능한 초기조건을 조사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우리가 모형으로부터 보고 있는 현상이 어떤 맺음변수 영역에서 나타나는지 말하기 어렵다면, ABM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설명 능력은 그만큼 약해질 것이다.
나아가 미시적 상호작용을 포함하다 보면 계산의 양이 매우 커진다는 점은 ABM을 현장에 응용하고자 할 때 반드시 따져보아야 할 사항이다. 예를 들어 전염병이 어떻게 창궐할지 일주일 단위로 예측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나치게 미시적인 수준의 정보를 다루는 ABM으로는 그 기한 안에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ABM은 계산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거시적 관찰을 미시적 설명과 연결하는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방법론이다. 더 넓은 견지에서 보면, 이처럼 ‘계산’이라는 열쇳말을 가지고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계산과학(computational science)’ 혹은 ‘과학컴퓨팅(scientific computing)’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에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지만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가 2003년 설립되고 이어 200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계산과학연구센터가 발족하면서 계산과학이 국내 학계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해외 교육과정으로는 스탠포드 대학의 수리계산과학전공(Mathematical and Computational Science)과 일본 카나자와 대학의 계산과학 코스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 계산과학 연합전공, 그리고 연세대학교 수학계산학부(계산과학공학) 프로그램이 대학원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부 과정으로는 올해 최초로 부경대학교에 과학컴퓨팅학과(Department of Scientific Computing, 가칭 과학시스템시뮬레이션학과)가 자연과학대학 안에 설립되어 계산물리학, 양자화학, 수리생물학, 계산신경과학, 양자컴퓨팅, 그리고 계산사회과학까지 망라하는 교육과정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이렇듯 이론과 실험이라는 양대 연구방법론을 보완하는 컴퓨팅 기반의 연구는 꾸준히 그 저변을 넓혀 왔으며, 컴퓨팅에 기반한 대표적인 계산기법으로서 ABM은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결과를 산출해왔다. 그 장점과 한계를 탐구하는 일은 앞으로도 연구 및 교육에서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 각주
- 1)P. Mirowski, More heat than light: economics as social physics, physics as nature's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 2)E. Bonabeau,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99, 7280 (2002).
- 3)J. M. Epstein and R. Axtell, Growing artificial societies: social science from the bottom up (Brookings Institution Press, 1996).
- 4)M. Niazi and A. Hussain, Scientometrics 89(2), 479 (2011).
- 5)C. W. Reynolds, (1987, August). Flocks, herds and schools: A distributed behavioral model. In Proceedings of the 14th annual conference on Computer graphics and interactive techniques (pp. 25-34).
- 6)D. Helbing, Reviews of modern physics 73(4), 1067 (2001).
- 7)X. Yang and P. Zhou,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196, 307 (2022).
- 8)P. Sobkowicz, PloS one 11(5), e0155098 (2016).
- 9)M. Nowak, Supercooperators: The Mathematics of Evolution, Altruism and Human Behaviour (Or, Why We Need Each Other to Succeed) (2011).
- 10)M. Tomassini and A. Antonioni,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364, 154-161 (2015).
- 11)C. A. Aktipis, J Theor Biol. 231(2), 249 (2004).
- 12)D. Kraines and V. Kraines, Theory and decision 26(1), 47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