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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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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돈에도 방정식이 있다

격동하는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관점: 물리학도에게 보내는 초대장

작성자 : 채승병 ㅣ 등록일 : 2022-07-07 ㅣ 조회수 : 29 ㅣ DOI : 10.3938/PhiT.31.026

저자약력

채승병 박사는 2006년 KAIST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복잡계 이론을 바탕으로 국내외 경제사회 시스템, 기술 및 경쟁환경 지형 등에 대한 현황 분석 및 미래 예측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seanchae@gmail.com)

A Different Viewpoint for the Better Understanding of Turbulent Economic Systems: An Invitation to Physicists

Seungbyung CHAE

As global socioeconomic systems are getting more complex, their dynamics is also getting more turbulent nowadays. Traditional economics and finance have tried to understand and control them as quasi-equilibrium systems exposed to external shocks or perturbations. However, various local and global crises of last decades have posed the limitations of such approaches. The viewpoint of physicists dealing with abrupt changes, such as turbulence, critical phenomena and self-organization, has become very valuable for better understanding. Huge opportunities are open to physicists with fresh insights in many business fields confronting with such challengeable real-world problems.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에 대한 유명한 대중 강연에서 “물리학은 많은 현상들을 몇 개의 이론으로 합쳐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1)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처럼 물리학은 언뜻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연현상 속에서 이면을 관통하는 공통의 원리를 성공적으로 파헤쳐왔고, 지금도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궁극의 이상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파인만은 그 뒤에 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이건 분명히 해두죠. 제가 물리적 세계의 모든 현상이 이 이론으로 설명된다고 할 때는, 사실 그건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대부분의 현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수의 전자들이 관여되어 있어서 우리의 빈약한 지적능력으로는 그 복잡성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론은 이런 상황에서는 대략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고, 지금 상황에서 대략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데 쓸 수 있는 정도죠.”

이는 경제물리학의 지식이 우리가 복잡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헤쳐 나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질문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경제물리학은 예컨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스핀 글라스(spin glass)와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간에 통계적인 유사성을 찾고, 하나의 이론적 틀로 엮어 설명하려는 시도를 해왔고 부분적인 성공을 거둬왔다. 그렇지만 경제물리학 연구자들이 전통적인 경제학자, 금융공학자, 애널리스트들보다 경제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파인만의 고백대로 우리는 여전히 ‘복잡한 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경제물리학처럼 통계물리학에서 파생된 융합 분야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 분야를 전공한다는 것은 그저 물리학의 모형을 억지로 끼워 맞춰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지적 유희를 즐기는 것에 불과할까? 필자 또한 대학원 시절부터 항상 이런 걱정을 해왔고, 직장에 취업한 이후에도 경제경영 분야의 관련 전공자분들로부터 관련된 날카로운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10년 이상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보면서 그렇게 비관할 필요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물리학에서 출발하여 경제 시스템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나름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모든 학문 분야는 복잡한 현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단순화시켜, 즉 이상적인 모형으로부터 출발해 이해의 지평을 넓혀 나간다. 경제학은 특히 이를 위해 고전물리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 20세기 초 근대 계량경제학의 개척자인 어빙 피셔(Irving Fisher)는 고전물리학의 힘과 에너지, 장(field) 개념을 끌어들여 시장의 개인을 하나의 입자로 간주하고, 에너지는 효용(utility)에, 물리적 공간의 축은 각 상품(commodity)에 대응시켰다. 물리학에서 입자들이 공간 상의 수많은 가능한 경로 가운데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듯이, 경제학에서는 개인이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수많은 조합들 가운데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소비를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2) 이럴 경우 평형 상태에 놓인 입자에 작용하는 힘의 각 성분이 곧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균형 가격이 된다. 이는 시장에 참여하는 주체, 즉 행위자들이 평균적으로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완전히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완전 합리성(perfect rationality)’의 가정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고도의 기계적인 관점에서는 복잡한 경제 시스템과 시장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정을 가미한 많은 보완 또한 이뤄져 왔다. 예컨대 일찍이 허버트 사이먼(Herbert S. Simon)이 지적한 행위자의 ‘제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든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오류와 심리적 편향 등의 효과,3) 시장 메커니즘의 오작동을 초래하는 정보 비대칭 등 불완전성 요소도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왔다. 생명과학적인 요소들을 가미하여 생산-소비와 같은 일련의 활동을 생명체의 물질대사 과정으로 이해하고, 주변 생태계 및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가미하고자 하는 시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접근법만으로는 경제 시스템의 동역학4)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있다. 물리학적으로 이해한다면 전체적인 에너지가 크게 변하지 않고 동적인 평형 상태에 있는 준 안정적인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해석적인 기술을 용이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으며, 경기순환 등 주기적(또는 준주기적) 변동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상 역동적인 변화의 경우 내생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의 외부에서 가해지는 크고 작은 충격을 원인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물론 평온한 시기에는 이러한 관점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오늘날 목도하고 있듯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변화무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경제 시스템의 동역학을 이해하고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필자가 취업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특히 이를 절감하게 만든 여러 사건이 발생하였다. 2007년에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5)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본격화되었다. 이에 2007년 4월부터 내로라하는 대형 금융회사들이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고 연쇄적으로 파산에 몰렸으며, 급기야 2008년 9월 글로벌 초대형 금융회사이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 시스템에 일대 위기가 벌어졌다. 그 이전까지는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6)와 같은 금융위기는 대응 역량이 떨어지는 비선진국에서나 일어난다고 여겼는데, 선진시장이라는 미국과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금융회사들이 큰 곤경을 겪으면서 심리적인 충격 또한 어마어마했다. 곧이어 그 충격에서 겨우 한숨을 돌린 2010년부터는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하였다. 처음 위기에 몰린 그리스의 경우 경제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이전부터 취약국가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들어 유럽 제3위의 경제대국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채무 불이행 위기에 몰렸고, 이들 남유럽 국가에 막대한 대출을 해줬던 독일, 프랑스도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유로존 전체로 공포가 번져 나갔다.

이러한 거대한 위기들을 경험하면서 주류 경제, 금융 분야에서도 시스템의 복잡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파국적인 동역학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과거처럼 이를 확률분포의 극단에 해당하는 커다란 충격으로 인한 이상 상황으로 보아서는 현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도, 실용적인 처방도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계현상(critical phenomena),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등 다양한 현상과 그 이면의 동역학에 익숙한 필자와 같은 경제물리학 전공자의 관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잘 알다시피 아무런 지능이 없고 고정된 자연법칙에 따라 수동적으로 운동하는 물리적 입자들로 구성된 시스템에서도 상전이와 같은 급격한 상태 변화는 일어난다. 임계점 부근으로 갈수록 주변 입자들과의 연결관계가 긴밀해지고, 국소적인 반응이 상쇄되는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중첩되며 그 영향 범위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 변화는 놀랍게도(혹은 당연하게도) 고도의 지능을 갖고 상황 변화에 따라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나 인간 조직(기업 등)으로 구성된 경제 시스템에서도 유사하게 재연된다. 심지어 인간은 학습이 가능한 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물리적 입자보다도 더 빨리, 더 강고하게 연결관계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단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유발한 이면에는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해줘도 부도 위험은 낮출 수 있다는 새로운 파생금융상품과, 이해하기도 어려운 최신 다변량통계 위험 평가 기법을 너나할 것 없이 따라한 탐욕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부실의 연쇄고리가 형성이 되어, 처음에는 금리 상승으로 일부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한 채무 불이행이 폭포 효과(cascading effect)를 만들어내고 거대 금융회사까지 쓰러뜨리고 만 것이다.

물론 디테일로 들어가면 여러 차이점은 분명 존재한다. 자성체와 같은 물리 시스템의 경우 임계현상을 유발하는 제어변수(control parameter)가 하나(예컨대 온도)이지만, 경제 시스템은 여러 개의 제어변수가 동시에 개입되고, 임계점을 특정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거의 전부이다. 거품이 잔뜩 낀 실물 또는 금융시장의 중요한 제어변수는 정책금리가 되겠지만, 금리가 딱 몇 %여야 그럼 임계상태가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설령 같은 5% 금리여도 담보인정비율(Loan-To-Value, LTV) 같은 다른 요인에 따라 시스템은 파국을 맞을 수도 있고 건재할 수도 있다. 거기에 정책 당국이나 다른 시스템 감독자들의 개입이 있기 때문에 물리 시스템에서 깔끔하게 예측되고 관찰되는 임계 지수(critical exponent)같은 보편성(universality)도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경제, 금융 분야 전문가들이 경제 시스템의 극단적인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메커니즘을 더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점점 빈발하는 경제 시스템의 위기가 구성 주체들 사이의 관계가 다양화, 고도화되며 전체적인 복잡성이 증가한 결과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관점도 서서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이전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로 여기던 분이,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우면서 나중에는 이것을 현재 경제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시켜 볼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글로벌 금융 및 실물시장 사이의 실질적인 연결 네트워크 구조와, 각 시장의 지표 및 거래자 행태의 동조화 수준을 측정해 향후 금융위기가 발생할 위험을 지표화하는 과제를 수행하기도 했다. 필자 외에도 통계물리학 백그라운드의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경제, 금융 실무에서 다양한 과제들을 수행해왔고,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경제 시스템을 엿본 물리학자들의 소임이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일찍이 파인만이 상기시킨 것처럼 여전히 우리는 경제 시스템을 오롯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경제-경영-금융 등 다양한 기업 실무에서도 더 많은 물리학 전공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공헌을 기다리고 있다. 더군다나 시대적으로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끝도 없이 지속될 수 있을 것만 같던 양적완화의 부작용이 본격화되고, 급기야 우크라이나 사태로 다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과 자산가격 조정의 폭풍에 진입하고 있지 않은가. 전 세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시스템적인 위기 요인을 규명하고, 어떻게 그 악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대비할 수 있는지 새로운 시각과 연구 방법론이 매우 긴요한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역동적인 다양한 물리 시스템의 미시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깊고,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다양한 계산 방법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본인이 물리학적인 통찰을 사회와 경제를 망라한 더 넓은 지식에 녹여내어 보다 처방적인 새로운 지혜를 만들어 보고싶은 꿈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과감하게 경계를 넘어 도전에 나서 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각주
1)R. P. Feynman, QED: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8).
2)P. Mirowski, More heat than light: Economics as social physics: physics as nature's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3)이러한 효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유명해진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4)경제학에서는 동학이라고 주로 표현한다.
5)미국의 주택담보대출에 해당하는 모기지론 중, 차입자의 상환능력이 떨어져 안전한 프라임 등급에 못 미치는(Sub-Prime) 대출을 의미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금융회사들은 저금리와 미국 정부의 자가주택 구입 장려 정책에 편승해 이러한 부실채권을 분할, 희석하여 겉보기에 위험이 낮은 것처럼 만들어 남발하였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끝나고 2006년부터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이러한 서브프라임 등급 모기지 상환이 대거 연체되며 부실이 드러났다.
6)우리 한국에는 IMF 외환 위기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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