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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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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물리학을 공부할 타이밍

작성자 : 정세영 ㅣ 등록일 : 2023-10-31 ㅣ 조회수 : 1,553

캡션정 세 영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교수
국가지정 단결정은행 은행장

나는 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을 한다. 돌아가신 모친께서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 가면 불리하다는 지혜를 남기셨다. 물리학에 큰 재능이 없는데 물리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사실은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선택을 하고 보니 물리학 분야에 이미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 박사과정에서는 방향을 틀어 결정물리학을 전공하였다. 1990년 당시 상황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도 교수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교수가 된 것이 아마도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연구했던 덕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서 교수가 되고 난 후에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는 인기종목은 의도적으로 피하였다. 물론 연구하는 분야가 결정성장이다 보니 MgB2나 GaN 같은 결정을 성장하면서 반짝 빛을 보기도 했지만 왠지 주목 받는 분야에 가서 속도전에 압박을 받는 것이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2002년에 남들이 하지 않는 구리를 연구하게 되면서 너무 재미있었고 빠져서 연구하다 보니 그게 소위 “인생물질”이 되었다. 나름 사람 많이 모인 곳을 피하는 철학으로 참 슬기롭게 잘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창 시절 1학년 입학과 더불어 맞았던 데모가 3학년 박정희 시해 사건에 이르러 휴교사태로 고체물리 Kittel 3장까지 배우고 X-ray 장비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독일로 유학을 갔었는데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늘 학부시절 제대로 못 배운 탓을 하며 박사과정 동안 여러 번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 오는 비행기표 예약을 했다 취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교수가 되고 그동안 강의한 과목을 세어보니 양자역학, 고체물리, 현대물리를 비롯해서 결정학, 나노기능성 재료, 박막공학, 군론 등 18과목이나 되었다. 18개 과목을 32년간 강의하다 보니 학창 시절 강의를 잘 배우고 못 배우고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제 강의 타자가 되었다. 처음 1991년 32살 나이에 교수가 되었을 때는 강의실력이 형편없었을 텐데 수업에는 학생들이 60명이 넘었고 수업 마치면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았고 대학원생들도 골라서 받아야 할 정도로 인기가 넘쳤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고마운 줄을 몰랐다. 주 12시간 강의에, 전임강사로 발령 나서 1년 안에 거의 6‒7편의 논문을 투고하지 못하면 재임용 탈락될 확률이 높아 인생의 고달픔을 혼자 다 안고 살았다.

그러다 2002년 물리학과에서 나노과학기술대학으로 옮겨 그나마 익숙했던 과목을 두고 다시 새로운 과목들을 개발하며 10년 정도를 강의 개발에 시달렸다. 나노대 학생들은 아무래도 물리보다는 화학과 생물을 선호하기 때문에 물리를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대학원 과목을 쉽게 소개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나노기능성 재료, 응집물리 응용 등의 과목이 그런 것이었다. 올해 2023년 1학기에도 대학원 과목으로 나노기능성 재료라는 과목을 개설하였다. 원래 신청 학생수가 많은 과목은 아니었지만 올해는 3명이 신청을 하였고 학기 시작 2주만에 1명은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에 부담을 느껴 수강 취소하였고 또 한 명은 중간고사 이후 영어로 발표하는 순서가 되자 발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사라졌다. 결국 인도네시아에서 온 학생을 데리고 남은 학기를 마무리하였다. 32년간 18과목을 가르친 경험이 무슨 소용인가? 행여 한 명 남은 학생이 졸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그 인도네시아 학생이 매우 진지하게 수업을 들어주어 끝 마무리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이밍은 아쉽다. 이전 60‒70명씩 수강을 하던 시절에 강의를 잘 할 수 있었더라면 학생들에게 물리학의 묘미를 더 잘 가르쳤을 텐데. 지금은 준비는 되어 있으나 학생이 없고 그때는 강의력이 아쉬웠다. 1987년 독일에서 군론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처음 군론 수업에 40명 정도가 수강 신청을 하였는데 군론 수업이 너무 지겹고 교수의 강의도 거의 혼자 도를 닦는 수준이어서 매주 학생 수가 반토막 나더니 결국 학기 끝에는 나 혼자 남아 교수 제안으로 교수연구실로 가서 마지막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연구할 기회가 있어 밤늦은 시간에 대학원생들의 연구실에 가보면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일찍 퇴근하고 외국 학생들이 연구실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왠지 예전 유학 시절 독일 학생들이 퇴근하고 빈 연구실을 지키며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과 겹쳐 보여 마음이 짠했다. 한국 학생들에게 지금이 물리학을 공부할 타이밍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전하는 것이 좋을지 막연하다.

연구주제로 학계에서 소위 핫하다고 여겨지는 인기 종목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구리 단결정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내가 해서 발견만 하면 모두 처음이 되는 것. 그런 것을 20년간 했다. 그런데 구리단결정 연구를 하다 보니 점점 물리학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결정학자에 가깝다고 늘 주장했는데 60이 되어서야 점점 물리가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직 구리의 가려진 낯짝들이 얼마나 많을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지만 그 대가는 크다. 그런데 이번에도 타이밍이 아쉽다. 많이 둘러서 왔지만 막 물리에 재미가 붙었는데 내년에 정년퇴직이다.

물리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나처럼, 피해서 왔지만 결국은 만나고야 마는 물리학의 세계는 조금 오래 버텨야만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진국 같은 것이다. 다시 태어나면 결정학으로 피해가지 않고 물리학에 진지하게 정면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년퇴직은 인생 2막의 시작 아닌가? 매주 이론 과목으로만 9시간 강의를 하고 학생지도와 각종 위원회 등 셀 수 없는 잡무를 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에 겨우 논문을 쓰던 시절에 비하면 어쩌면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물리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누가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가? 강의도 없고 잡무도 없어지고 진정한 자유전자가 되는 것이니, 이제 나만 잘 마음 먹으면 되지 않을까? 나에게 물리학을 공부할 타이밍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syjeong@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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